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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Mar 09. 2017

옆집 아저씨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때였을 것이다. 같은 동네에 있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것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포장이사 아저씨들이 떠나신 후 정리하면서 좀 쉬어볼까 하는 찰나,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바로 그 날 이사를 온거라 집을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 도대체 누구지.우리 가족 모두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더니, 하얀 단발머리 (진짜 단발머리셨다. 장발은 아니고 어깨를 살짝 못미치는 남자치고는 약간 긴 머리)의 아저씨가 소주 한 병을 들고 서 계셨다. 그리고는 아주 환하게 웃으시면서,


"안녕하세요, 옆집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사도 오시고 해서 인사도 하고 친하게 지낼 겸 왔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옆집 아저씨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에피소드 1

옆집 아저씨는 원체 흥이 많으신 분이었다. 음주가무를 즐기시고 미식가셨던 아저씨는 당신이 알고 계셨던 무수히 많은 맛집으로 우리 가족을 자주 데리고 다니셨다. 식당에서도 드시고 싶은 메뉴들을 다 시키셔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진귀한 메뉴들을 먹어본 것도 아저씨덕분이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던 것도 아저씨 덕분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한 번 식당에 앉으시면 몇 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서 정말 배부르게 식사한 적이 많았다. 아저씨는 천천히 음미하며 드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우리 가족은 아무래도 음식을 좀 빨리 먹는 경향이 있었던 탓에 속도가 맞지 않아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우리 모두 배가 불러 더 이상은 못 먹겠다, 하고 있으면 아저씨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먹어봅시다."

...

아저씨, 우리 좀 살려주세요.



에피소드 2

아저씨는 사업체를 경영하시면서 냉면집도 운영하셨다. 아저씨의 냉면집에서 나와 내 동생은 수육이라는 걸 난생 처음 먹어봤는데, 그 맛이 너무 맛있어서 수육 먹으러 아저씨네 가게 가자고 매일 조를 정도였다. 나야 별로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지만,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고, 호불호가 확실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입에도 잘 대지 않아서 부모님이 걱정하셨다. 그랬던 동생이 앉은 자리에서 아저씨네 수육을 3접시 올클리어 했으니... 그 후부터 내 동생을 미스 수육이 되었다. 헬로우, 미스 수육.



에피소드 3

한창 디제이덕(그래, 그때는 디제이덕이었어...)의 노래, "DOC와 춤을"이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있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난 젓가락질을 못한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보라는 젓가락질을 붓글씨 쓰듯이 하는구나"라고 하신 이후로 내가 이상하게 하는걸 알았다. (엄마 말로는 고쳐보려 했지만 안됐다고 하시는데, 의심이 가는 바다. 심히.)

그리고 옆집 아저씨 가족이랑 같이 식사를 하는데, 노래 가사와 똑같이 내 젓가락질을 보시면서 뭐라고 하셨다. 난 거기에 노래로 답을 해드렸지.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말아요!"



에피소드 4

옆집 아저씨는 분위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아무 식당에나 가시지 않으셨고, 아무 음식이나 드시지 않았다. 음식에 맞는 분위기가 있고 그에 맞는 시간이 있다는 신념이 강하신 분이었다. 그 때 당시 뜨고 있던 미사리 카페촌도 아저씨의 레이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카페나 가느냐, 댓츠 노노. 정해진 룰과 순서가 있는 법. 우선, 우리 가족과 아저씨 가족은 차에서 대기하고, 아저씨 혼자 들어가셔서 커피를 한 잔 시키신다. 그러시고는 분위기와 음악, 그리고 커피 맛의 삼중주가 잘 맞는지 아저씨만의 기준을 통과하면, 차를 향해 손짓. 아저씨의 손짓이 나오면 우리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에 주스를 마실 수 있고, 아니면 우리 모두 다음 카페로 출발.  번거롭긴 했지만 아저씨가 손짓하며 들어오라고 한 카페들은 분위기도 음료의 맛도 다 좋았기에 누구 하나 불평할 수 없었다. 굿 잡, 아저씨.



에피소드 5

아저씨는 낭만을 빼면 시체인 분이었다. 음악도, 술도 넘치도록 좋아하신 흥이 넘치는 분이셨으니,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노래방을 가야만 끝이 보였다. 가끔은 노래방에서 쏟으신 에너지 충전을 위해 다시 식당을 가시기도 하셨지만 대부분은 노래방에서 그 밤의 여정을 끝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더 어렸던 동생, 밤이 늦어지며 졸리고 피곤하면 노래방 소파에서 자기도 했고,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이들 재롱이라며 귀여워해주셨던 아저씨랑 아줌마. 그 때의 노래방 투어 덕분일까, 그 때 듣고 들었던 트로트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특히 아저씨의 18번이었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아직도 전주의 색소폰 소리만 들어도 아저씨 생각이 난다.



에피소드 6

아저씨는 음주가무도 좋아하셨지만 낚시광이셨다. 덕분에 낚시와는 거리가 멀던 우리 아빠도 아저씨랑 낚시를 몇 번 가셔서 고기를 잡아오시고는 하셨다. 나도 어렸을 때 한 번 쫓아갔었는데, 정말 지루하고 무슨 재미에 낚시를 할까 이해하지 못했다. 아저씨의 물고기 사랑은 멈추지 않아서 물고기의 형태를 한 조각이나 미술품, 사진, 그림 등을 수집하셨다. 집에 들어서면 벽에 걸려있는 물고기 그림들부터 물고기 조각들, 물고기 도자기, 물고기 장식품까지 없는 게 없었다. 여행을 하다가도 물고기 모양을 한 물건이 있으면 아저씨의 컬렉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사가지고 와서 아저씨께 드리고는 했었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물고기 모양이 보이면 제일 먼저 아저씨 생각이 난다.



에피소드 7

아저씨는 내가 공부를 잘 할 것같이 생겼다고 '하버드 학생'이라고 부르셨다. 그 때는 안경도 끼고 다니고 원래 성격도 차분했던 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봐주셔서 나름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버드가 얼마나 대단한 학교인지 모르고 그냥 '하버드 학생같아, 나중에 꼭 하버드 가라'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마냥 기분이 좋기만 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저 하버드 가라고 하신 덕분인지는 몰라도, 저 하버드 근처에 있는 학교 나왔어요. 선견지명이 있으셨네요. 조금만 더 많이 '하버드 학생'이라고 불러주셨다면 전 하버드에 갈 수 있었을까요...?



에피소드 8

아저씨 가족과 함께 근처에 있는 조금은 고급스러운 중국집을 갔을 때다. 아저씨는 역시나 능숙하게 주문하신 후에 몸에 좋은 음식을 시켰으니 꼭 한 입은 먹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은 다름 아닌 청경채 요리였다. 청경채를 통채로 찐 것 같은 비주얼에 소스를 끼얹은 음식이었는데, 몸에 좋은 거라면서 하나를 턱하니 주셨다. 통채로 먹어야 한다고 해서 한 입에 넣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온 입 안이 다 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아저씨, 진짜 몸에 좋아서 한 입에 먹으라고 하신 거에요, 아님 저 놀리신 거에요?



에피소드 9

아저씨 가족은 둘째 아들 (내겐 옆집 오빠였던) 이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셨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오기 1년 전에 가셨고, 또 난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이민을 생각하고 계신 줄 몰랐기때문에 너무나 아쉬웠다. 부모님의 이민생각이 굳혀지고 현실화되면서, 아빠는 미국에 가기 전 미국과 비슷한 환경에 우리를 데려가 간접경험이라도 시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셔서 2002년 2월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아저씨는 뉴질랜드에 정착하신지 1년도 채 안되셨는데 이미 맛집들을 다 알아놓으셨고 어떤 곳은 이미 단골이셨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같았던 아저씨가 너무 멋져보였다. 하루는 해변가의 피자집에서 앤초비가 올려진 피자에 갓 짜낸 오렌지주스와 맥주를 마시며 석양을 바라봤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생전 처음 먹어본) 패션프루츠를 먹으며 바닷가를 바라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홍합을 한 포대기 사와서 네버엔딩 홍합찜을 먹기도 했지.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 라고 아주 선명하게 느꼈던 그 날, 그 오후의 바람까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저씨의 푸근했던 미소까지도.






같이 옆집에 살고 친하게 지낸 것은 정작 몇 년 안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살았던 기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텔레비전에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우연히 듣게 된다거나, 지나가다가 물고기 모양의 장식품을 마주친다거나, 냉면집을 지나간다거나, 혹은 하얀 백발의 중년 남성을 어디선가 마주치게 될 때면 꼭 아저씨가 생각난다. 우리 가족도 미국에 이민오고 난 후로 연락이 한동안 끊어져 소식을 못 듣고 지냈던 것이 한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뵜던 것이 이민 오기 전,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던 2002년이었으니 15년을 못뵈었던 것인데, 그래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아저씨 가족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 때 그랬지 하면서 아직도 엄마 아빠랑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 되었는데, 언젠가는 우리 가족과 아저씨 가족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푸근한 미소를 짓는 아저씨가 소주잔을 흔드시며 "한 잔 합시다!"라고 외치실 그 날이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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