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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Jul 15. 2017

여름날의 잡생각

1. 유난히 더운 날들이 지속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불과 1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온도차가 무려 10도가 훌쩍 넘게 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늘에 있으면 그래도 좀 낫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몇 블락을 걷는 것도 짜증이 날 때가 있으니 여름은 나랑 잘 맞지 않다. 


2.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날씨에 대해 spoiled 되었다고 말한다. 항상 햇살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좋은 날씨환경을 가진 지역이라 그런지 비가 조금만 와도 햇빛을 달라며 툴툴대곤 한다. 좋은 날씨 덕인가 이곳의 사람들은 동부의 사람들보다 잘 웃고 또 여유로운 것 같다. 


3. 나는 유독 더위에 약하다. 그렇다고 추위에 강하냐, 그것도 절대 아니다. 원체 예민한 성격에 예민한 체질이라 더위도 잘 타고 추위도 엄청 탄다. 그렇지만 둘 중에 고르라면 난 추위를 택한다. 더위는 너무 힘들다. 열이 잘 받기도 할 뿐더러 추우면 옷을 더 껴입기라도 하면 나을텐데 더울 때는 답이 없다. 인간의 본성의 모습 그대로 발가벗는다고 해도 더운건 더운거니까. 


4. 썸머타임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거의 9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도 너무 밝아서 기분이 이상해진다. 하루가 끝나지 않는 것만 같은 기분. 시간은 흐르지만 멈춘 것 같은 기분. 여름이 온 남극에는 하루종일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백야 현상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간접체험을 하는 것만 같다. 남극에서는 살 수 없겠다. 


6. 어제 아빠와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눈 대화. 

"아빠, 해가 너무 늦게 져서 싫어. 밤 8시 30분인데 아직도 환하잖아. 난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매일 매일 1분씩 해가 일찍 지고 있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금방 겨울이 될걸. 너도 모르는 사이에."


7. 눈깜짝할 사이에 2017년의 반이 지났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간다는 것이다.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고 나만 혼자 뒤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밝았던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기분인것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결코 갈 수 없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직 날이 밝은데 어두운 새벽에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은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8. 더워서 그런가, 잡생각이 많아진다. 유난히 긴 것 같은 여름밤, 잠이 오지 않아 말똥말똥 눈을 뜨고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노라면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난 조금 추운듯한 방에서 이불을 턱 밑까지 당겨 덮고 웅크리고 자는 걸 좋아하는데, 여름은 이래저래 나와 맞지 않는다.


9. 참으로 두서없는 글이다.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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