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북라이프, 2016
“오늘도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린 거예요? 아무 곳도 안 가고?”
“응. 그러려고 네덜란드에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래도 다른 곳도 아닌, 여기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림 그리려고.”
“그게 전부?”
“응. 이상하지? 그림도 못 그리는 주제에. 너무 못 그려서 초급반만 세 번이나 들었어. 그래도 세 번이나 들었으니까 나는 초급반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모든 요일의 기록 中, 김민철, 북라이프, 2015
정말이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대화가 아닐 수 없다. 단지 그림을 그리려고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여행을 온 노인. 연두색 나시와 짧은 청바지를 입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데도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빈 말으로라도 잘 그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솜씨를 가진 할아버지. 그림을 너무 못 그려 초급반만 세 번이나 들었지만 좌절은커녕 ‘초급반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에 대한 오롯한 애정.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고 그것보다 해야만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느낀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일은 하고 싶은 일이 어떤 목표나 욕심으로 이어지면서 즐거움보다 의무감이 쌓이는 때다. 순전히 자기만족으로 취미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기왕 하는 것 더 잘하고 싶고, 기왕 하는 거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바로 그때 취미는 더 이상 취미로 부를 수 없는 무게를 갖게 된다.
일상의 도피처로 취미 생활을 시작했으나, 취미생활이 또 다른 일상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사진을 찍는 것과 잘 꾸려진 공간을 찾는 게 그랬다. 흘러가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찍었던 정방형의 사진과 똑같은 루트로 귀가하는 삶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기 위해 방문한 카페나 전시들이 한 때는 해방처럼, 혹은 단조로운 일상을 채워줄 물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취미가 욕심으로 번졌음을 눈치챈 것은 여느 주말처럼 좋은 장소를 찾고 있을 때였다. 문득 '이 오랜 시간을 들여 이렇게 먼 곳을 굳이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상에서의 탈피로 시작했던 취미가 결국은 또 다른 일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날은 조용하고 깔끔한 카페가 아닌 다소 소란스러운 학교로 향했다. 지갑과 책 한 권을 챙겨 삼십 분 가량이 걸려 도착한 학교에서 그늘 진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주말을 맞이해 놀러 나온 주민들과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읽은 책에서 우연히 사랑스러운 노인을 만났다.
치열한 삶에 대한 동경으로 쉴 새 없이 달리면서 한 숨 돌리려 시작했던 모든 일들이 또 다른 치열함으로 번지는 일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기왕 하는 거 잘해보자는 마음이, 뭐든지 잘하면 좋다는 생각이 앞서 여유를 잊게 할 때가 있다.
나는 아마 앞으로 어떤 취미를 가져도,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도 종종 이전과 같은 실수를 할지도 모르겠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해 과정의 즐거움보다는 결과의 성공 유무를 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초급반의 전문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빈 말으로라도 잘 그렸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그림 솜씨를 가져서 초급반을 세 번이나 들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초급반의 전문가라고 부르는 여유와 호쾌함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