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김혜진, 민음사, 2017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 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딸에 대하여 中, 김혜진, 민음사, 2017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는 주인공이 레즈비언 딸과 딸의 연인과 동거하게 되면서 사회가, 가끔은 스스로가 그녀 자신에게 가하고 있던 혐오와 배제를 깨닫는 이야기다. 소설 속 딸은 박사 과정을 밟으며 너무 많은 것을 배워버린 여성이다.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배운 나머지, 사회에 은밀하게 만연한 불합리함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그 불합리함에 온 몸으로 맞서는 인물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 ‘나’는 평범한 60대 여성이다. 단어 그대로 너무나 평범해서, 세상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딸의 성적 지향을 외면하며 그녀가 ‘평범하게’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차별에 맞서 싸우고, 타인이 겪은 불합리한 처우를 마치 내 일처럼 분노하는 딸과 그녀의 애인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녀 말을 빌리자면,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지, 젊은 날의 패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남들처럼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순 없는지 딸에게 할 수 없는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삭이는 인물이다.
너무나도 다른 세대를 살아온 모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딸 ‘그린’은 엄마의 ‘보통 사람과 같은’ 태도가 불만이고, ‘나’는 딸아이의 성정과 성적 지향성, 삶의 태도가 못 미덥기만 하다.
사실 이 두 모녀는 너무 익숙한 모델이다. ‘연애’, ‘결혼’, ‘출산’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 역시 『딸에 대하여』에 나오는 모녀가 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엄마의 생각이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딸 말이다.
내 눈에는 문제가 여실히 보이는데 왜 묵인하고 넘어가길 원하는지. 왜 나의 불편함을 ‘예민함’으로 치환해버리는지. 왜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에 맞추길 바라는지 …. 그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내게는 부당하게 여겨지는 것에서 모녀의 갈등은 시작된다.
나와 가장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녀와의 갈등은 예정된 일이다. 그녀는 종종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결혼’에 관한 문제다. 나로 말하자면 결혼이란 제도에 의구심이 있고, 내 일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때론 그녀가 ‘너도 결혼하면~’. ‘결혼해서 애 낳으면~’과 같은 말을 할 때면 속에서 울컥하고 분노가 차오를 때가 많다. 모녀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 가고, 일하다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는 세대와, 기혼이 정상이고 비혼(非婚)이 특이한 케이스로 여겨지는 게 못 견디게 싫은 세대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아온 사회가 달라 삶을 대하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몇 번이나 이해하려 하지만, 머리와 달리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마음 한쪽이 답답해지는 것은 막을 길이 없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모녀간의 평화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눈치 싸움 속에서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지속되는 것일지 모른다. 영원하지 않고, 누군가 선을 넘는다면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평화 말이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녀가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듯이. 어쩌면 내가 불편함을 말하는 모든 것들이 그녀와, 그녀의 세대에게는 젊은 세대의 치기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우리는 몇 번의 갈등 끝에 같은 결을 가질 수도 있고, 아니면 내내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
설령 그들의 말처럼 세상이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닐지라도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와 시대의 기대에 순응하지 않고, 한 번쯤은 ‘왜 그래야 하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는 게 새로운 세대를 사는 사람들의 특권 아닌 특권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