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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제이비 Jan 18. 2024

게으른 자의 자유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를 끝내고, 응급실을 갔고 다음날 사표를 내밀었다. 친구들은 어차피 사표 쓸 거, 왜 끝까지 해냈냐고 '펑크나 내버리고  사표쓸 것이지' 라고 말하긴 했지만, 펑크를 내는 게 나한테는 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냥 나다운 선택을 했다.


팀장도, 상무님도 미안했는지 너무 미안하다고, 사표는 언제든지 쓸 수 있으니 유급휴가를 가라고 하셨다. 회사의 배려아닌 배려로 나는 지금 1년째 쉬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인데,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르다. 강압적이거나 외압이 들어와야 몸을 움직이는 타입이다. 그래서 강제성이 있다면, 바쁜 프로젝트라고 해도 야근을 해서라도 해 낸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면 딱히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하거나 트렌드자료를 읽기보다는, 몰래 휴게실 안마의자로 기어들어가 잠을 자는게 일쑤인 사람이다 .게으른 내가 15년 간의 회사 생활을 버티는 방식이었다. 내 친한 회사 친구는 내가 자리에 없으면 '또 분명 어디선가 자고 있겠거니' 할 정도로 잠을 좋아한다.



그런 천성을 가진 내가, 휴직과 더불어 '남편의 도움'으로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하게 됐다.  제법 월급과 비스무레한 돈을 벌게 되었다.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일을 해도 얼추 월급 비슷하게 벌 수 있는거다.


말그대로 직장인들의 로망인 '시간적 자유' 라는 것이 나에게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낮잠을 맘껏 잘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게 꿀잠을 자기는 커녕 집에서 잠을 자다보니 죄책감이 드는거다. 그 좋은 낮잠을 자도 기분이 너무 안좋기 시작했다. 남들은 열심히 일하고 땀흘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내가 이리 살아서 되겠는가. 이 의문이 찾아왔다.


낮잠이 하나도 즐겁지 않고 불안만 물밀듯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너무 이상한게 아닌가? 회사에서는 일 없으면 숨어서 똑같이 낮잠을 자고 와도 죄책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아주 월급 루팡으로써 오히려 회사 생활을 잘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회사를 다녀왔어'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제 역할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랗게 게으르게 누워서 내린 나의 결론은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회사라는 곳을 다시 가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직장인들의 로망은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거다.  그래서 다들 투자나 다른 사업들을 하면서 퇴사를 꿈꾼다. 결국 더 소중한 것을 하기 위한 '시공간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나는 너무 감사하게도 그 시공간적 자유를 비슷하게 이루었다. 카페에서 일해도 되고, 외국에서 일해도 된다. 그런데 나는 낮잠 하나에도 불안을 느낀다. 


나는 늘 주어진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내가 나에게 미션을 주어가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됐다.


낮잠 하나에도 불안을 느끼는 걸 보면, 나에게 주어진 이 자유에 대한 책임이 회사가 아닌 나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생각해낸 결론이 '다시 강압적으로 나를 컨트롤 해줄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한 내 '뇌' 가 원망스러웠다.


15년 간 착실히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직장인 종특, 나의 노예근성 때문일 것이다.  (모든 직장인이 그런건 아니고 유독 게으른 내가 그런 것이다. 화내지 말아주시길)


나의 이런 마음을 남편한테 했더니 성경에 모세와 이스라엘 이야기를 해줬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가 있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가 지겹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맛나가 맛이 없다고, 차라리 '자유' 보다는 주인이 가끔 주는 '고기'를 먹는게 나으니 다시 '노예'를 해야 겠다고 투덜댄다.  남편은 나에게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하고 다를게 없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숨은 내마음을 들여다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내 시간과 삶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 넘겨버리면 참으로 편했던 거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 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더이상 뭘 하지 않아도 될 커다란 핑곗거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게으른 나의 뇌는 '자유' 라는 가치보다 '핑곗거리' 거리를 찾는게 더 편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유라는 것도 정말이지 준비된 자에게 주어 졌을 때 값지게 사용될 수 있는 거다.

그래도 깨닳은게 있으니 또 오늘도 이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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