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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Apr 13. 2020

흉내 낸 영화

백두산(Ashfall, 201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백두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더 록>과 <아마겟돈>을 떠오르게 합니다. '리준평(이병헌)'과 '조인창(하정우)'은 <더 록>에서 각각 '메이슨(숀 코네리)'과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를, 영화의 전개와 결말 부분은 <아마겟돈>을 떠오르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 영화는 '클리셰'가 가득한 영화입니다.


<더 록>(1996)과 <아마겟돈>(1998)


<더 록>의 '굿스피드'는 FBI 소속의 생화학 무기 전문가이고 '조인창'은 전역을 앞둔 특전사 소속 EOD요원입니다. 우선 '굿스피드'는 군사 작전 경험 내지 훈련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영화에서도 그는 생화학 무기 해체만을 목적으로 작전지역에 투입되었고, 특수부대의 보호 하에 움직였습니다. 군사훈련, 실전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이 부분의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인창'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전지역의 지휘관으로서 휘하 부대원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엉성하기만 하고, 북한 한복판에서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대놓고 걸어 다니며, 헬멧은 벗고 다닙니다. 더구나 나 이 작전이란 게 미국, 중국 몰래 하는 작전이라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음에도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나름 특전사 부대원인데 이렇게 표현한 건 개연성이 너무나 떨어집니다.


<더 록>의 '메이슨'은 영국 SAS 소속의 정보장교로 각종 기밀자료가 담겨있는 마이크로필름을 빼돌리다 체포된 캐릭터입니다. <백두산>의 '리준평'도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이지만 남한에 포섭되어 스파이 활동을 하던 도중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힌 캐릭터입니다. 둘 다 최고의 스파이인 셈이죠. 두 캐릭터 모두 장발로 첫 등장을 하고, 머리를 자르고, 샤워를 하며, 가족사가 있는 캐릭터입니다. 몇 가지 설정만 다를 뿐 거의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유일하게 만듦새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캐릭터가 '리준평'이란 것입니다. 이는 분명 배우의 힘 덕분이라 생각됩니다.


<더 록>의 '메이슨'과 '굿스피드'. <백두산>의 '리준평'과 '조인창'


<아마겟돈>에서는 거대 유성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유성 표면에 착륙하여 굴착을 하고 핵폭탄을 설치하여 폭발시키는 것이 대응작전입니다. <백두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마그마방 근처에 핵폭탄을 폭발시켜 자연재해를 막겠다는 것이고요. 비슷한 발상이지만 이 작전의 과학적인 검증은 부실한 측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화산 폭발을 부추긴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도 있다 하고요. (이것 말고도 개연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부분은 많지만... 넘어가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도 <백두산>의 결정적인 아쉬움은 유머를 거의 집착하는 수준으로 다뤘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유머는 분명 영화의 탄력을 주지만 이 영화는 그 탄력에 너무 의지하여 긴장감이 끊기는 느낌을 줍니다. 백두산 폭발이라는 자연재해 상황에서 진지하게 임하는 게 아니라 서로 농담 따먹기 바쁜 상황만 계속 보여주면 이게 과연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이 맞긴 한 건지 의아함만 부추깁니다.


<백두산>은 흥행을 위해 클리셰를 택했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영화가 진부하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클리셰 범벅인 영화가 잘못되었다고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아 제작되는 상업영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클리셰를 선택한 것은 '흥행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선택일 테니까요. 클리셰가 아무리 넘치다 못해 흐른다 해도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면 그 영화는 대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셈이니 이는 곧 흥행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본 전제는 최소한의 디테일을 갖춘, '만듦새'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클리셰는 있는 데로 가져다 썼으면서도 만듦새가 엉성하다면 그건 흉내내기 밖에 안되니까요. <백두산>이 그런 영화였습니다.


'흉내 낸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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