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소녀(After My Death, 201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
- 영희(전여빈 님)
영화 <죄 많은 소녀>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추측에서 시작됩니다. ‘영희(전여빈 님)의 친구인 경민(전소니 님)이 실종되었고, 둘은 실종 전에 같이 있었다.’라는 사건에서 경민의 어머니(서영화 님)를 비롯해 담임 선생님(서현우 님)과 형사(유재명 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모아 추측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민이 실종된 이유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사람들이 섣불리 ‘확신’하면서 생깁니다.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래 보인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형사를 비롯한 학교 친구들은 영희를 ‘죄 많은 소녀’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폭력으로 변질되고 말죠. 영희가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한 물리적인 증거를 찾는 것이지만, 보통의 학생에겐 너무도 고독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가만 보면 참 야속합니다. 확신에 대해 입증해야 되는 책임은 영희가 아니라 그걸 확신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결국 영희는 유서와 함께 자살을 택하고 맙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영희가 자살기도를 하였다.’라는 새로운 사실이 생겼고, ‘왜?’라는 질문이 영희 주변에 있었던 이들에게 던져졌고, ‘영희가 자살기도 한 이유’에 대한 새로운 추측과 섣부른 확신이 생겼습니다. 섣부른 확신을 가지고 영희를 향해 돌을 던졌던 아이들은 이제 그 돌이 자기에게 날아올까 두려워합니다. 누군가는 잘못을 빌었고, 누군가는 또 하나의 ‘죄 많은 소녀’를 만드는가 하면, 경민의 어머니는 그 돌이 두려웠는지 자신을 향해 칼을 꽂으려 합니다.
우린 삶 속에서 많은 ‘추측’들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추측이 틀림없음을 보이고자 객관적인 사실과 주위의 소문을 채워 나갑니다. 그 추측이 때론 맞는 경우도 있고, 틀린 경우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럼에도 그 추측을 쉽게 확신하는 것을 보면 섣부른 확신이 가져오는 파문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 확신으로 인해 누군가를 향해 돌팔매질이 이어졌고, 멋지긴커녕 섬뜩하기만 한 ‘멋진 죽음’이 완성돼버렸음에도 ‘섣부른 확신’을 그만두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죠. 영희의 ‘멋진 죽음’은 또 다른 파문을 가져올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때는 ‘돌을 던져도 된다는 것’ 보단 ‘돌을 던져도 되는 이유’에 대해 냉정히 바라보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추측이 그럴싸하게 맞아떨어질 정도로 우린 완전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