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연물을 활용한 창작에 있어 누구보다 감각이 뛰어난 분이셨다. 가치가 낮은 돌을 활용한 석부작의 개념을 처음 시도하신 것도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연출한 작품을 화훼단지에 한 차 가득 실어다 놓으면, 유독 아버지 것만 빠르게 팔려나갔다. 안목, 감각, 센스. 그 모든 게 입소문으로 전해졌고, 업계에선 뭐랄까,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숯을 바라보다가 그 무늬와 질감이 주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셨던 것 같다. 기존에는 수반에 돌만 올렸지만, ‘숯’이라는 자연재료로도 공간을 연출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바로 이런저런 시도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프레임 안에 숯을 고정시켜 벽에 거는 형태의 소품이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조형성과 기능성을 갖춘 새로운 창작물이었다.
누가 보아도 멋졌다. 아버지는 이 작품을 사업화하고자 여러 경로를 통해 권리를 보호받는 방법을 알아보셨고, 결국 의장등록을 마치셨다. 숯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다양한 형태의 ‘벽걸이 숯부작’을 제작하며 본인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셨다. 의장등록증은 액자에 넣어 공방 벽에 자랑스럽게 걸어두셨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전,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는 곧 ‘표적’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께 물건을 받아가더니, 곧 비슷한 제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 “자신이 최초 개발자”라며 언론에 알렸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중국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국내로 들여오기도 했다. 그중에는 부유한 사업가도, 정치인도 있었다. 그들은 크고 유능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혼자였다. 법을 다루는 일은 생소했고, 그저 벽에 걸린 의장등록증을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아오는 뻔한 대답은 하나였다.
언젠가 침해당한 권리를 찾을 수는 있겟지만, 거기에 이르기에 개인이 진행하려면 비용도, 시간도, 무엇보다도 진행하면서 받을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이라는 말. 사실 의장 등록도 누군가 전문적으로 잘 등록해준 것도 아니었고, 이걸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선뜻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일 이후, 아버지는 그 사업을 접으셨다. 그 모든 과정이 가족에게 하나의 긴 그림자처럼 남았다.
권리란, 무엇일까.
의장등록처럼 법으로 보호되는 ‘산업재산권’도, 저작권처럼 창작 표현을 보호하는 권리도, 결국은 약자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아이디어가 가치 있고, 수익이 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권리를 넘본다. 그리고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지식, 시간은 대부분 창작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시골 어디에서, 손끝 감각만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라면 더욱 그렇다. 기술도, 자본도, 마케팅도 없이 오직 ‘감각’만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은 세상에 내놓는 순간부터 외롭다.
그래서,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을 넘어 이를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시스템과 그 개발이 필요하다.
창작물은 더 쉽고, 더 직관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등록과 권리 행사가 큰돈을 가진 사람에게만 유리하지 않도록, 누구든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술이 발전한 시대라면, 그 기술은 창작자를 위한 방향으로도 쓰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창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창작물이 범람하는 이런 시대에 휩쓸리지 않을, 작더라도 튼튼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구명선 같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내가 쓴 글과 아내가 그린 그림으로 함께 만든 책을 출간할 일이 있었다. 우리는 출판사 대표님의 권유로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에 저작권을 신탁해 등록했는데, 그 과정에서 창작자가 스스로 권리를 지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작은 창작이라도, 스스로 그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감각이 몸에 스며드는 경험이었다. 아버지는 지금의 아들이 그때 있었더라면, 하고 가끔 아쉬워하신다.
문득,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나 이것저것 여쭈어보며 글을 썼다. 백열등 아래,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함께 액자에 숯을 끼워 넣던 이야기도 말씀하신다. 벽 한편에는 갱신도 못한 색 바랜 의장등록증 사본이 걸려 있다. 아쉬운 마음에 처분하지 못한 숯 액자 하나도 함께 조용히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