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상, 9년 후
엄청난 액수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10년 후를 추적해 봤더니, 당첨금으로 인한 부를 잘 유지하며 윤택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보았을 것이다. 올해의 운 정도는 다 끌어다 써야 5천 원 한 장 겨우 당첨될까 싶은 대부분의 우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쉽다 못해 화가 나는 그런 이야기. 나에게 100억 정도의 당첨금이 주어진다면, 당장에 강남에 아파트도 사고, 나와 가족들의 노후 대비도 단단히 해 놓고, 배당금 성실한 배당주들로 통장을 두둑이 채워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삶의 기반을 마련해 둘 텐데! 대체 당첨이 되었을 때의 환희와 다짐은 어디로 가고, 어쩌다 그런 일생의 기회를 약하고 무딘 마음으로 날려 먹었을지 모를, 바보 멍청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2016년 10월, 나는 어쩌면 인생을 바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기회에 당첨된 사람이었다. 일도 삶도 세차게 흔들려 무어라도 세게 붙잡을 것이 필요했던 시절, 제대로 된 책상조차 없던 원룸 한구석 딱딱한 스툴 위에 앉아 매일 밤 서툴게 서툴게 써냈던 열 편의 글이 그해의 브런치북 은상 수상작이 된 것이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토록 소망했던 책도 출간하게 되었고, 소소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들도 얻게 되면서 거리낌 없이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매번 새로운 환희를 느꼈다. 책날개에 써넣었던 말처럼 ‘언젠가 회사 안에서의 그 어떤 이름표보다 작가라는 이름표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면서, 주말마다 노트북을 이고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이대로라면 어쩌면 평생 글밥 먹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었다.
9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토록 값진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며 살고 있을까? 하루하루를 성실한 쓰기 습관으로 채워,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작가로서의 기반을 잘 다져 두었을까? 유감스럽게도 답은 No다. 첫 책을 출간한 이후 6년여가 지났지만 매년 쓱쓱 써낼 줄로만 알았던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고, 30대를 살아내며 삶의 이런저런 새로운 도메인들과 전투를 치르다 보니 매일의 성실함은 늘 조금씩 글이 아닌 다른 것에 양보 되었다. 직장인으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 첫 책을 출간했거나, 함께 브런치 베타 시절에 글을 썼던 이들이 자신의 글밭을 잘 가꾸어 성공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그것대로 마음이 쓰렸다. ‘당첨의 순간’ 이후 10여 년, 회사 짬밥은 그보다 훨씬 많이 먹은 나는 이제 글밥 먹는 삶과는 영영 멀어진 걸까? 약하고, 무딘 마음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도 답은 No다. 이래도 직장인, 저래도 직장인이라지만,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든 글과 이야기를 다루는 일을 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시간은 천천히 글감으로 쌓여 두 번째 책을 준비하게 되었고, ‘휘갈김’에 가깝더라도 매일 뭐라도 쓰는 글력을 잃지 않기 위해 만든 글쓰기 모임을 몇 년째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꾸준히 꿈꾸고 있다. 사랑받는 글 생산자들을 꾸준히 질투하고 있다. 글이 아닌 다른 곳에 힘을 쓴 시간을 자각할 때마다, 서글피 약해지려는 마음과 꾸준히 대치하며 오늘의 한 문장을 소중히 대하려 애쓰고 있다.
10년 전에 첫 페이지를 열어, 이제 두 장이 남은 일기장이 있다. 10년 동안 노트 한 권을 채우지 못했다면 그것을 과연 ‘일기’라 부를 수 있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문득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은 나만의 꾸준함이 애틋하다. 언젠가 나태와 무기력을 이겨 결국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글을 쓰고야 마는, 진정한 환희의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단단한 연글술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