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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방송 Oct 01. 2020

어설픈 글이라도 쓰는 이유


"우리가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순간은 우리가 약점을 드러내고, 허약함을 보여주고, 엉뚱한 공상을 고백할 때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자신이 실패한 이야기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사람, 자기가 갈망하는 것, 혹은 정말 넋이 나가버린 상태가 된 순간을 이야기를 할 때, 지루함을 느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알랭 드 보통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


최근 내가 쓴 글들을 보고 비슷한 고민이기에 공감이 가고,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내 글에 공감을 표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어설프게 늘어놓은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을 유려하게 쓰는 사람이 못되기에, 머릿속에 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내 밖으로 어떻게 끄집어내야 하는지 몰라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이 말하였듯이, 내가 말하는 것들이 아주 사소하지만 모두가 고민할 만한(부끄럽거나 혹은 두려워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다음은 얼마 전 읽었던 김소연 시인의 <시옷의 세계>에 나오는 글의 일부이다.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하기란 너무 쉽다. 생은 아름답고 살 만하다는 낙관은 누구나 얻고 싶어 하므로, 따뜻한 문장은 인기 품목이 된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런 위로는 어딘가 삶과 유리돼 있다. 생이 어찌하여 아름답고 그리고 살 만한지를 알기 위해 치러야 할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은폐하려 한다.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굴곡이 흘러들고 흘러 나가는 일을 겪으며 우리 삶은 불완전한 채로 완성되어간다. 상처가 나고 옹이가 맺혀간다. 그 과정 속에서,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롭기도 하지만 우리는 겪은 불행들을 더 잘 이해하면서 더 겸손해지고 더 예민해진다. 그리고 성장하고 늙어간다. 그 과정 자체가 삶이고,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고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고귀한 경험들은 따뜻한 온도의 문장이 아니라 밀도 높은 문장만이 감당할 수가 있다." - 김소연 <시옷의 세계>


이렇게 살기는 싫다며 무작정 선택한 퇴사,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 계속되는 연애의 실패 등 내가 쓴 모든 글들은 이러한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굴곡' 속 나의 고군분투기다. 이러한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아팠지만 더 성장했다. 처음 시작은 단순히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남겨 놓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허약함을 보여주는 것'이 누군가 비슷한 아픔 혹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같이 '성장하고 늙어가는' 기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을 밀도 높은 문장으로 남기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는 것. 결국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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