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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방송 Oct 01. 2020

내 마음에도 상처가 날 수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어두운 감정도 인정하기

오래된 친구의 말이 나를 기분 상하게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마다 참고 쌓아두다가 결국 폭발해버렸다. 친구는 내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혹은 죽은 후에도 영원히 모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가. 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고 한들 이런 나라는 인간이 한순간에 바뀌었겠나. (절대 아니지.) 최근 상대방의 행동이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고 속상하게 해도, 괜찮은 척 신경 쓰지 않는 척 상대방에게 행동했고 나 자신 또한 속였다. 도대체 왜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신경 쓰이면 신경이 쓰인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왜 스스로 감정의 벙어리가 되기로 자처한 것일까.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 알렉스는 지지가 남자들에게 연락이 안와 고민할 때면 가차 없이 "그는 그냥 너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를 외치며 겉으로 쿨한 척 모든 여자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 자신이 어느새 지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지지는 그의 일련의 행동들을 보고 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에 알렉스는 왜 여자들은 남자들의 사소한 행동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냐며 지지를 몰아세운다. 그 상황에서 지지가 알렉스에게 한말. "그래도 나는 내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해. 내가 사소한 것을 부풀려 생각한다고 해도 마음을 쓴다는 뜻이니까. 널린 게 여자니까 네가 맞다고 생각해? 물론 상처받거나 웃음거리가 되진 않겠지만, 그렇게 해선 사랑에 빠질 수 없어.”

물론 영화 속 상황은 나와 다르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때 거부당해서 상처받거나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상처받기 싫어서 나를 안전한 보호막에 넣어두고 조금이라도 언짢은 감정들은 무시하고 회피했다.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나는 안전할 거라고. 난 정말 괜찮은 거라고. 생각만 하지 않으면 불편한 감정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너무 쿨하게 살아서 냉소적이게 살면 더 좋은 일은 없다. 글을 쓸 때에도 어쩌면 그게 더 쉽고, 뭐랄까 문학적으로도 더 멋있게 꾸미기도 좋아.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인생은 상처는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더욱 황당한 것은 상처는 후회도 해 보고 반항도 해 보고 나면 그 후에 무언가를 극복도 해 볼 수 있지만 후회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공허는 후회조차 할 수 없어서 쿨하다 못해 서늘해져버린다는 거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인간관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시련과 혼돈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아서는 안되는 귀중한 보물처럼 여겼고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기만을 바랐다.

"결국 겁이라는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자신의 욕망에 몰입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자세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감정 수업>, 강신주

평소 나라면 절대 못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이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고 상대에게도 이런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입장이 어떤지도 물어보았다. 할지 말지를 수십 번은 고민했으니 나에겐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말하고 나니 얼마나 속 시원하던지. 여태까지 말 못 하고 혼자 끙끙거리기만 했던 지난날의 모든 내가 안쓰러웠다. 앞으로는(물론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아무렇지 않은 척 상대방에게도 쿨한척하며 내 감정을 속이고 홀로 괜찮다고 자위하지 않기로 했다. 슬픔, 답답함, 우울함, 초조함, 화남 등의 어두운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내 마음도 때로는 누군가로 인해서 상처가 날 수도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실컷 후회하고 상처받자.
그게 쿨한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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