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서문에는 마라톤 러너들이 마라톤을 할 때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달리는 동안 외우는 만트라mantra (신성하고 마력적인 어구) 중 하나로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이라는 말이 소개된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들, 어려운 일들은 그 과정에 힘듦(Pain)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힘듦으로부터 내가 고통(suffering) 받는 순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면, 나는 주로 이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이것이 나의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그 일이 내가 해내고자 선택한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직시하게 되면 버티는 힘이 생겼다. 나의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만약 과거의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면 그 선택이 무의미한 선택이 되지 않도록 더 애쓰곤 했다.
반면 어떤 힘듦이 내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났을 때는 쉽게 고통받고 괴로워하곤 했었다. 어떤 불행한 일이 나와 가족에게 닥쳤을 때, 또는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터졌을 때는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벌어진 일들 앞에서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 무기력한 마음이 들곤 했다.
몸이 몇 년간 희망 없이 오래 아팠을 때, 죽음이 편하겠다 생각했을 때, 일종의 영적 체험을 한 일이 있었다. 나는 종교도 없고, 이러한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이때 나는 비슷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나, 이러한 죽음과 영혼의 여정에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곤 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읽은 내용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지금 내가 겪는 삶(의 어려움)은 실은 나의 영혼이 선택한 것이라고. 이 구절을 어딘가에서 읽었을 때, 나는 “지금 나의 고통이 실은 내가 나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선택한 것이라니, 내 영혼은 왜 그런 어려운 선택을 했나”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내가 걸어나가봐야지”하는 가볍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 용기 같은 것이 생겼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진실로 믿든 믿지 않든, 나는 “이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것을 마주하고 직시한다는 것”의 힘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내가 선택한 일들에서 힘듦이 느껴질 때, 그리고 이 힘듦(pain)이 내게 어느 순간 고통(suffering)으로 다가오려 할 때가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이라는 말이 위력을 낼 수 있는 순간인 것 같다. 지금 이 힘듦은 내 주체적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숨통을 틔워주기도 하고, 내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긴다. 만약 어떤 어려움이 나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온 것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 과정에서 힘듦(pain)을 느낄지언정 고통(suffering) 받지는 않을 수 있다. 힘들겠지만, 힘들더라도 고통받으면서 살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