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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석윤 Apr 18. 2024

On the road to Kuta


길리섬에서의 휴가를 끝내고 우붓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지내고 있어요. 일을 하다가 갑갑함이 찾아왔는데, 이겨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원래는 이곳에서 요가와 명상 클래스를 많이 듣고, 즐겁게 워케이션을 보내고 싶었는데 최근 일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번아웃이 아직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은 것인지 다시 일을 하니 지친 마음이 찾아왔어요.


일이 끝난 저녁에는 원래 요가 클래스에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친구가 예전에 보내준 해질녘 붉은 석양이 하늘을 가득 채운 꾸따의 바다 사진이 생각났어요. 바다를 보고 오면 이 답답함이 조금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이미 꾸따의 석양을 보러 가기엔 늦은 시간이었고, 우붓에서 꾸따까지 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잠깐 고민이 들었지만, 그냥 되는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꾸따로 가는 택시를 잡았습니다.


저녁 6시가 일몰 시간이라는데, 1시간이 넘는 거리를 5시 반 정도에 차를 급하게 잡았고, 또 가는 길에 차가 많이 밀려 석양을 보지 못하고 헛걸음을 할 가능성이 높았어요. 그런데 꾸따의 비치로 가는 차 안에서부터 이 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이 피어올랐습니다. 붉고 푸른 꾸따의 석양을 보러 가는 길 위에 있었기 때문에요. 아름다운 꾸따 해변의 석양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제게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꾸따의 붉은 해변을 볼 수도, 보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꾸따의 해변이 정말 사진처럼 아름다울지, 아니면 실망하고 돌아설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길 위에서 자유로이 나의 의지로 행복을 찾아가본다는 그 사실이 제게 더욱 중요했습니다. 정혜윤 PD의 말처럼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것이 낫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사랑할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나으니까요."


꾸따의 해변 근처에 다다르니 이미 해가 많이 저무는 듯했습니다. 6시 반쯤이면 일몰이 끝난다는데 이미 시간이 꽤 늦어 시간은 6시 15분을 향해 있었습니다. 차가 많이 밀려 이대로는 꾸따의 석양을 놓칠 것만 같아 길 위의 택시에서 내려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달렸어요. 10분여를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달려 꾸따의 해변에 도착했고, 마침내 다다른 그곳엔 아직 끝나지 않은 꾸따의 붉고 푸른 황홀한 석양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꾸따의 붉은 석양 가운데에는 푸른 달까지 떠있었고, 찾아오는 밤의 푸른 어둠과 마지막을 향해 가는 붉은 석양이 만나 만들어내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바다에서 조우하니 지금 이 순간 발리에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실감이 났습니다.


짧았지만 황홀했던 붉고 푸른 석양에 충분히 취한 뒤 뒤돌아서며,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알 수 없었던 '가능성의 경계' 위에 있던 꾸따의 석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만약 손에 넉넉히 쉽게 잡히는 것이었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하고요. 아마 가능성의 경계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이윽고 현실로 다가왔을 때 이렇게 가슴 깊게 와닿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에 대한 가능성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사는 일은 그 가능성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올 때 주는 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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