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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r 12. 2022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패션 틱톡 크리에이터 하다(HADA)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시대가 만드는 재능이 있다.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요즘 시대에는 끼 많고 콘텐츠 기획력까지 갖춘 인재가 넘쳐난다. 유튜브, 틱톡 없던 때는 대체 어떻게 지냈나 싶다. 그 근간에는 관심받고 싶은 마음 ‘관종력'이 있다. 끼와 기획력이 마차라면, 마차를 끄는 말은 관종력이다. 마차가 크고 튼튼한 게 기본이지만, 관종력이 약하면 마차는 꿈쩍 않는다. 반면 강한 관종력은 대단치 않은 마차도 더 빨리 더 멀리 가게 한다.    


틱톡 크리에이터 하다(HADA)로 알려진 이호연님이 본격적으로 관종력을 뽐낸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사실 마차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패션을 전공하며 옷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능숙하게 사용해왔고, 일터에서 막 영상 업무를 맡던 즈음이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남은 에너지가 관종력으로 승화되자 비로소 마차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국가별 빌런(악당), 영화 캐스팅 등을 패션과 표정만으로 보여주고 1초마다 다른 사람이 된다. 감각적이고 힙하다. 이제는 240만 명이 따르는 마력의 호연님은 어떤 유튜브를 재밌게 봤을까. 언뜻 상극으로 보이는 두 영상을 추천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PHMSPkUII


첫 번째 영상은 Emily mit Ypsilon의 ‘나 자신과의 인터뷰'다. 1인 2역의 상황극으로, 무례한 질문과 편협한 판단을 거듭하는 독일인이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를 인터뷰한다. 외국 생활을 하며 겪는 정체성 혼란을 단편영화 수준으로 담았다. 정체성을 지키라고 다그치면서도 다름을 배척하는 인터뷰어의 태도는 서구권 외국인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도망쳐 온 것이지 않냐는 일침에 반박의 여지 없이 뼈를 맞는다. 그저 셀프 인터뷰라는 형식만 빌려온 게 아니라 자아성찰이라는 메시지와 꼭 맞는다. 고급스러운 독일어와 흑백 화면에 치이고 가는 건 덤.          



두 번째로 추천한 <핫바리>의 ‘가루쿡셰프 디저트 편'에서는 분위기가 확 바뀐다. 한국어에 이탈리안 억양이 섞인 기묘한 모습의 셰프가 장난감 요리를 만드는데, 20년 전 사용자제작콘텐츠(UCC) 같은 저화질에 요동치는 앵글, 근본 없는 전개 등 모든 게 B급이다. 머리 비우고 낄낄대게 한다. 사실 핫바리는 예전에 커플 유튜브로 유명했던 ‘스탑환'과 동일인이다. 연인과 헤어지며 공백기를 가지던 중, 핫바리라는 캐릭터가 나타나 스탑환을 죽이는 퍼포먼스 영상을 올리고서 채널명이 <핫바리>로 바뀌었다. 핫바리부터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인데, 그 와중에 가루쿡셰프 캐릭터도 만들었다. 나를 지우는 것도, 만드는 것도 초간단하다. 재밌기까지 하다.    

두 영상과 호연님의 틱톡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결이 보였다. 멀티 페르소나. 그때그때 되고 싶은 나를 툭툭 만든다. 어느 정도 영속성이 있는 부캐(부캐릭터)보다 더 유연하다. 호연님이 이렇게 상반된 영상을 모두 좋아하는 것처럼, 모두에게는 다양한 때로는 모순된 면이 있으니까. 모두 나면서, 모두 내가 아니기도 하다. 멀티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끼, 기획력, 관종력을 가진 그들이 내심 부럽기도 하다.    


한때 연극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다닐 때,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도 사회인 연극을 이어갔다. 전과 있는 수녀, 학대받는 지적장애아, 갑질하는 로마시대 귀족 등 역할 뒤에 숨어 또 다른 내가 되는 게 좋았다. 나를 벗어날 때 느끼는 쾌감과 해방감이 있다. 그러다가 일과 병행하기엔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서 그만둬버렸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세 사람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만약 당시에 이렇게 비교적 손쉽게 나를 벗어날 방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 속에 너무도 많았던 나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시대가 없애는 재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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