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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Jun 07. 2022

내 마음대로 예술 작품 해석하기

퐁피듀 센터에서의 글 조각들

미술은 잘 모르지만 미술관은 좋아한다.

한 분야에 무섭도록 능통한, 살짝 맛이 간 예술가들이 사력을 다해 창조해낸 작품들이 걸린 공간의 정숙한 정열을 좋아한다. 핸드폰이 아닌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 조심스레 옮겨지는 발걸음 소리, 큐레이터가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안내판의 나열을 좋아한다.


미술관에서는 자주 영감을 받는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전 미술보다도 표현의 자유와 추상성 사이에서 실험하던 근현대 미술 전시에서 더더욱. 성인이 되고서 여행 다닐 때마다 미술관을 찾은 끝에 이제야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을 알아보는 정도의 문외한이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시각적인 자극에 반응해왔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 작사가 하고 싶었고 강렬한 그림을 보면 글이 쓰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에서는 메모장을 십분 활용한다. 올바른 해석이 아니더라도, 새벽감성에 가까운 날것의 글조각이더라도 - 그 순간 내 마음을 움직인 것,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된 문장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얼마 전 3년 만에 파리로 휴가를 다녀왔다.

가장 다시 찾고 싶었던 미술관인 퐁피듀 센터는 워낙 공간이 넓어 시간대를 잘 맞추면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고, 6층에 있는 레스토랑은 또 시내 뷰가 끝내줘서 파리에 갈 때마다 들린다.


특히 1905년-1960년대 미술을 전시해놓은 5층에서는 피카소, 마티스, 쿠프카, 미로, 달리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걸작부터 별로 유명하지 않은 그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아무리 휴대폰과 컴퓨터의 화질이 좋아졌다고 해도 그들이 온몸으로 그린 작품을 의도된 크기 그대로 직접 보았을 때의 압도감은 따라갈 수가 없다.




이번 여행에서 메모해둔 조각들을 꺼내어본다.








< Blue III, Joan Miró >


햇빛에 나 반짝하고 시작해서

가늘게, 연하게

파랑을 가로질러가는 삶


시야를 압도하는 검은 원은

나를 노리는 상어의 등일까

물에 비친 달그림자일까

















< Black, Red over Black on Red (1964), Mark Rothko>


뭉근하게 끓인 분노와

검게 비어 가는 슬픔

비명을 삼키는 고요 속에

많은 것이 죽는다













<Untitled - Shirley Jaffe>


다리를 벌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미쳤다 했다

미친 건 세상이 아닌 지 질문했다

피 묻은 외침들,

침략이 기본값인 형형한 눈동자


나무가 자라는 것은

오줌을 싸는 것은

강물이 흐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 아닌가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아닌 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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