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밈이 만들어낸 시티팝의 현상
시티팝이라는 현상이 언제부터 우리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을까. 시티팝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음악 씬에 퍼지기 시작한 때부터, 과거의 향수를 머금은 음악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시티팝은 일본의 버블, 한국의 경제성장 등 과거의 향수를 머금은 사운드로 설명되며 도회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음악으로 소개되었다. 소수의 힙스터 문화로 시작한 시티팝은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확고해져 음악 시장 메인스트림에 자리 잡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시티팝은 단기적인 유행이 아니었다. 뉴트로 자체의 길고 거대한 흐름과 매력적인 과거의 발견과 재해석을 통해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장르로 고정되었다. 시티팝은 분명 과거의 음악이지만 현재 인터넷 시대에서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시티팝이란 용어는 1980년대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흔히 AOR(Adult Oriented Rock)이라고 불리는 음악이었고, 이 음악들은 실제 등장했을 시기보다 더 큰 규모로 장르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디깅 클럽 서울에서 각종 시티팝의 리메이크를 시도하고, 김현철의 콘서트는 매진되며 레코드샵에서는 일본에서 시티팝 음반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왜 시티팝이 지금 갑자기 유행한 것인가?' '어떤 계기로 시티팝이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는가?'라는 것이다. 일본 음악, 특히 옛날 일본 음악은 세계적인 영향력으로 보았을 때 서브컬처에 가까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티팝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 현상에는 의문점을 남기게 된다.
시티팝의 유행이 뉴트로의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확산 과정을 설명하기 단순히 복고 열풍이라는 키워드는 조금 부족하다. 전통적인 대중매체가 뉴트로를 집중 조명하면서 대중들에게 전파한 것도 아니며, 거대 자본으로 뉴트로와 관련된 콘텐츠들을 앞서 만들어 낸 것 또한 아니다. 또한, 일반적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유명한 시티팝 앨범들은 제공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렇게 사용자들에게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미디어들은 어떻게 보면 시티팝의 유행의 시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과연 시티팝의 유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미디어를 통한 전통적인 유행 전파 방식과 다르게, 2010년대 후반 일부 시티팝 확산 현상은 오히려 인터넷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튜브를 통한 시티팝 확산 현상에는 마리야 타케우치(竹内まりや)의 <Plastic Love>가 있었다. 히트곡의 등장은 장르 유행의 지표가 되듯이, 이 싱글의 부활은 시티팝의 부활을 알리는 지표가 되었다. 마리야 타케우치의 <Plastic Love>는 1984년에 발표된 앨범 [Variety]에 수록된 곡이었다. 1980년대에 발표된 이 노래는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다시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17년 7월 6일, 한 유튜버가 업로드한 <Plastic Love>의 영상은 세계를 강타했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2천5백만 회에 달했고 마치 눈을 마주치는 듯한 청초한 모습의 앨범커버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캐치한 맬로디는 사람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음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영상의 등장 이후, 마리야 타케우치의 <Plastic Love>는 2018년을 기준으로 검색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마리야 타케우치"라는 검색량 증가 비율이 과거 정규앨범을 발매한 것과 같은 수준의 파급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마리야 타케우치와 <Plastic Love>에 대한 2차 창작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시티팝 전체에 대한 유행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Plastic Love>의 검색량 증가 현상을 두고 많은 의문이 발생한다. 마리야 타케우치는 <Plastic Love>가 아닌 다른 히트곡들도 충분히 많을 정도로 전설적인 가수였다. 그래서 그 많은 히트곡들 중에서 <Plastic Love>가 왜 그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또한 위에서 언급한 대로 30년 전의 음악이 이토록 유명해지게 된 과정도 충분히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세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이러한 유행을 설명한다. 첫 번째 이유는 Vaporwave의 등장을 통한 과거 일본 음악의 샘플링, 두 번째 이유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한 네트워크 효과다.
시티팝의 유행을 말하기 전에 거론되는 장르는 Vaporwave(배이퍼 웨이브)다. 퓨처 펑크라고도 불리는 베이퍼 웨이브는 2010년대 초반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등장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장르로 80~90년대의 향수를 재현하는 음악이다. 그래서 영상은 90년대 풍의 3D 영상을 사용했으며 과거의 음악을 샘플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Yung Bae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일본 시티팝을 샘플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시티팝에 대한 인지도가 이를 통해 상승했다고 설명한다. 배이퍼 웨이브와 같은 장르의 특징은 샘플링을 통한 조작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개별적인 작품으로 남는 것이 아닌 원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변형과 창작을 통해 시티팝이라 '밈'을 형성하게 된다.
'Meme'(밈)이라는 용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에 언급된 용어로써, 인간의 유전자와 같이 모방과 번식을 하며 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 문화 구성요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배이퍼 웨이브를 통해 형성된 시티팝이라는 샘플링의 '밈'이 형성되고 그 '밈'은 시티팝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위 주장의 설명이다.
밈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베이퍼 웨이브는 시티팝으로 밈을 확장시켜 유튜브 상에서 개인, 아마추어 유저들이 콘텐츠를 다운로드, 재생산, 리믹스 등의 2차 창작물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이러한 창작물들의 생성은 검색 가능성, 연결성에 기여해 다양한 콘텐츠 풀을 만들고, 이러한 반복적인 활동은 '장르'라는 현상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반복적인 밈의 전파는 인터넷이라는 연결성 높은 플랫폼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며, 마이너 한 장르 형성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인터넷에서의 밈은 유튜브에서 일어난 시티팝 장르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Plastic Love>가 이토록 흥행한 이유 중 두 번째 이유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한 이야기다. 시티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사실이지만, 시티팝을 디깅 하다 보면 오른쪽 추천 동영상에 <Plastic Love>가 자주 붙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몇 번 봤던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Plastic Love>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등장한다. 또한 영상의 댓글을 확인하면 '왜 이게 추천에 뜬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은 너무 좋다'라는 식의 증언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그 추천의 범위가 매우 넓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가 왜 <Plastic Love>를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소개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이유는 유튜브의 해당 관계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 알 수 있는 사실은, 일정 수준 이상의 노출은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이 작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당 영상은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 수록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는 네트워크 효과를 지니게 된다. 시티팝의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와 추천 동영상을 시청하는 경우를 포함해, 높은 조회수를 가진 동영상은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래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많은 사용자가 모이면 모일수록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해내고, 그러한 결과로 <Plastic Love>가 탄생하게 되었다. <Plastic Love>라는 다양한 밈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높은 가치를 지닌 영상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을 종합해 봤을 때, <Plastic Love>를 필두로 한 일본 시티팝의 유행은 전통적인 Top-down 형식이 아닌 유튜브라는 뉴미디어 속에서 탄생한 유행 전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유튜브와 인터넷의 사용자 연결을 통한 밈의 전파와 네트워크 효과는 우리가 직접 느끼고 있는 '시티팝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뉴미디어의 질서에서는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며 밈의 전달자로서 유행 형성을 이룬다. 이는 곧 콘텐츠 생태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역할 구분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개개인의 영향력 또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유튜브와 인터넷의 연결을 통한 밈의 전파와 네트워크 효과는 이토록 강력한 '시티팝 현상'을 만들었다. 과거에 머물러 있던 음악이 새로운 밈을 통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서브컬처 마니아들의 전달과 확산을 통해 다양한 영역으로 밈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확장된 노래들 중 하나의 노래가 미디어의 힘을 이용해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모았으며, 밈의 확산을 통해서 형성된 장르의 강력함과 수많은 사용자들의 규모가 다시 양성피드백을 형성하며 더 규모를 키워갔다.
이러한 뉴미디어의 새로운 질서는 앞으로 우리가 향유할 음악 감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밈'을 통한 확장이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은 롱테일 콘텐츠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고, 주류 문화의 영향력만큼 비주류 문화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티팝의 유행을 두고 언제나 서브컬처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만은 없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완벽한 Bottom-up 방식이 될 수 없다. 또한 밈이란 현상 또한 맹목적인 전달이 아닌 각 개인들에게 수용되고 전달되는 연결을 전제로 한다.
그래도 디지털을 필두로 한 미디어의 지형변화는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언제 어떻게 새로운 장르, 새로운 스타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유의 깊게 변화와 기회를 살펴보아야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