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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na Oct 04. 2022

01.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해

바야흐로 대혐오의 시대

나는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기꺼이 반가워하고, 그 어떤 사람과도 사랑스럽게 대화하며, 관계에 조바심 내지 않고, 심지어는 목소리마저 나긋나긋한 그런 어른.

아이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프다.


나는 다정(多情)한 사람이 좋다. 정이 많은 사람이 정말 좋다.

사전적인 의미의 정(情)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을, 심리학에서의 정은 ‘마음을 이루는 두 요소 가운데 감동적인 요소’를 뜻한다고 한다. 맹자는 정을 ‘마음의 쓰임’이라고 말했다는데 ‘잔잔한 마음에 무언가 움직임이 시작되면 그것이 곧 정’이라는 것이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이란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나 혼자만 중요한 그런 사람 말고, 타인의 삶도 중요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잘 쓰는 그런 사람 말이다. 누군가 내게 실수했을 때에도, 그가 비록 나와 일면식도 없을지라도, 무턱대고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고 마음 써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이즈음의 한국은 바야흐로 대혐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하다.

너는 아이라서 싫고, 당신은 어른이라서 싫고, 그쪽은 여자라서 싫고, 저 사람은 남자라서 싫고, 저이는 엄마라서 싫고.

싫어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을 벌레 취급하기도 한다. 맘충, 급식충, 한남충, 틀딱충…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쓰다.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정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정함이란 감정은 저기 먼 우주 끝 닿을 수 없는 소행성 같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다정함을 인류의 오랜 생존 전략이라고 소개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하여 현생 인류가 된 데에는 다정함이 큰 기여를 했다는 주장인데,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뿐만이 아니라, 낯선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하며 타인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을 말한다. 인류의 생존에 이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서술한다.


그 예로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인간과 많은 유사성을 가진 침팬지는 인지능력은 우수하지만 타인과 협력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고 한다. 다정함에서 비롯된 이 친화력이라는 것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습득한 지식을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도록 해주고 인류는 이를 통해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 올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집단 내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돌봄을 제공하고 유대를 맺으며 심지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현대인의 삶은 이 능력이 주도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그들을 그냥 참고 견뎌주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로를 돕는다. 장기를 기증하는 큰 친절도, 누군가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작은 친절도 이 유형의 친화력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P.159


내가 스물다섯 해 동안 살아온 고국 땅을 떠나 뉴질랜드에 자리 잡은 데는 이곳의 다정한 사람들이 한몫했는데, 키위(Kiwi)라고 불리는 뉴질랜드 사람들은 정말 다정도 병인양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적극적으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며 사는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었던 지난 12월에 만났던 다정한 이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그러니까 그날은 코로나로 인한 뉴질랜드식 거리두기( Level 3 Lockdown)에 새로운 시스템을 (신호등 체계) 적용하는 날이었다. 그 당시 뉴질랜드는 오클랜드는 Level 3 대신 빨간불 단계가 되었는데 기존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백신 패스.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백신 패스를 가지고 있는 경우 할 수 있는 게 조금 늘어났다. 나 같은 시민 1은 그저 몇 가지 변화가 있을 뿐이었는데 자영업 하는 분들에겐 그게 또 다른 의미인듯했다.

아이 유치원 근처에 있던 로스터리 겸 카페 Roma는 하필 내가 너무 사랑하는 커피맛이라서 왕왕 들리는 곳인데 그날 아침 별생각 없이 들렀다가 별스럽게 감동받고 왔다. 백신 패스를 스캔하고 카운터로 가 주문하는데 평소답지 않게 이 집 메인 바리스타가 카운터로 왔다. 커피를 주문하고서 계산하려는데 그가 수줍은 몸짓을 하고 몸을 베베 거린다. 여차하면 네 번째 손가락을 보여주며 나 결혼했어!(I am married) 할 생각으로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는 내게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 3개월간 우리 모두 쉽지 않았는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주고 서포트해줘서 고마워. 희망이 보이는 것 같지? 오늘 커피는 우리가 대접할게.”

나는 그의 진심이 전해지는 눈을 바라보다가 감동해서 두 손을 심장에 얹고서 가까스로 Thank you 하고 대답했다. 다정한 사람 덕에 마음이 커피 온도만큼 더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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