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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na Sep 30. 2022

나의 비밀 노트-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번 적어 볼까나.

하필 왜 그 책이 떠올랐을까.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으려나. 그즈음의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무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나의 비밀 노트’. 자기 비밀을 알려준다는데 의연하게 지나칠 초딩이 과연 있을까.

홀린 듯이 빌려온 그 책의 주인공은 아나스타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였다.


지경사: G13나의 비밀 노트 첫 번째 이야기 - 그래, 그런거야 / 지은이: L.로우리 / 옮긴이: 황용희 / 그린이 : 이명선 / 1992년 7월 30일 중판 펴냄


아나스타샤가 인사드립니다.
저는 아나스타샤라는 아주 멋진 이름을 가진 좀 변덕이 심한 소녀예요.
그렇지만 사랑을 느껴 본 적도 있고 또,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심각한 문제로 고민한 적도 있는 성숙한 아이이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과 제일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보시면 어처구니없어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에겐 아주 중요한 문젯거리들이라고요.


영희도 아니고 순이도 아닌 아나스타샤라니. 주인공의 이름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다.

평범치 않은 네 글자 이름을 가진 나는 그 무렵 짓궂은 아이들에게 이름으로 놀림을 당하곤 했는데 아나스타샤의 이름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얻었다. 아나스타샤는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무려 ‘아주 멋진 이름’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에 자부심을 가진 당당한 그 소녀가 부러웠다.

아나스타샤의 비밀 노트를 읽으며 점점 소녀와 가까워진 나는 급기야 이스스나의 비밀노트를 만들어 나갔다.

작고 허접한 장식용 자물쇠가 달린 노트를 하나 구해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과 ‘제일 싫어하는 것’ 들의 목록을 작성해나갔다. 몰래몰래 적어 내려 간 노트를 자물쇠로 꼭꼭 잠가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엄마에게 호되게 혼난 어느 날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목록 안에 있던 엄마를 ‘제일 싫어하는 것’ 목록으로 옮기고 이유를 달기도 했고, 며칠 못가 다시 ‘좋아하는 것’ 목록으로 엄마를 옮기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누가 보는 노트도 아닌데 혹시라도 엄마를 ‘싫어하는 것’ 목록에 옮겼었던 흔적이라도 남을까 봐 연필로 쓴 글자를 지우고 또 지웠다.

사랑을 느껴본 적도 있다는 아나스타샤. 어쩐지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오냐, 누구라도 하나 걸려봐라 하는 마음으로 맹렬하게 사랑할 친구를 찾아보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 누가 작은 호의라도 보였다 하면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목록에 올라갔다. 내가 ‘잠깐’ 좋아한 것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되기 일쑤였다.


작고 허접한 장식용 자물쇠가 버틸 수 있는 날은 길지 않았다. 두 살 위 언니와 두 살 아래 동생은 나의 비밀 노트를 염탐했고 ‘좋아하는 것’ 리스트에 적힌 남자 친구의 이름을 외워 놀려댔다. 청소시간에 빗자루를 들어줬다는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것’ 목록에 들어갔던 친구의 이름은 그 후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비밀 노트 기록은 끝이 났다.


근데 하필 왜 이 책이 지금 또 떠올랐을까.

이 즈음의 나는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 앞에서 자주 머뭇거린다. 스무 살 무렵엔 서른쯤 되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서른여섯이 된 지금 더 어렵기만 하다. 나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를 자주 생각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스물다섯의 아이유는 팔레트라는 명곡을 부르며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유도 팔레트 노래 가사에 그 무렵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쭈욱 나열해뒀다. 그래, 아이유야 언니도 한번 좋아하는 것들을 쭈욱 적어볼게! 그러다 보면 언니도 너처럼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게 되지 않겠니.


그러고 보니 아이유, 아나스타샤 너희들…! 아짜돌림… 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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