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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19. 2024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커먼즈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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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에 관한 일반의 상식은 대체로 기독교 신앙과 관련되지 않나 싶다. 어두운 중세 시대, 악에 물들어 마녀가 된 사람을 기독 신앙의 권세에 기대 처벌한다는 것. 스스로를 불안정노동자이자 현장연구자, 무산자이자 커머너로 소개하는 한디디(본명 한경애)는 최근작 《커먼즈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2024, 빨간소금)에서 ‘커머너(commoner)’들이 마녀가 되었다면서 마녀사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녀사냥은-글쓴이) 유럽 각지에서 인클로저가 벌어지며 농업자본주의가 부상하던 시기에 수십만 명의 여성이 학살된 사건입니다. 흔히 마녀사냥을 (미신에 사로잡힌) 중세의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마녀사냥이 가장 맹렬하게 벌어진 시기는 학문 체계가 정립되고 근대국가가 출현하는 15~18세기입니다.” (86쪽)


전통적으로 여성, 특히 미혼 여성과 과부 같은 약자들이 (누구의 소유도 아니므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커먼즈(commons)에 크게 의존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커먼즈를 울타리치기(인클로저) 시작하면서 이곳에서 식량이나 땔나무를 구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여성들이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대대적인 인클로저 이후 소작료와 물가가 폭등하면서 삶이 팍팍해지고 화폐경제가 널리 퍼지자 경제적 이해관계에 민감해진 사람들 사이에 ‘희생양 찾기’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 제일의 표적이 나이가 들었거나 가난한 독신 여성들이었다. 마녀 고발자는 마을에서 제법 잘 사는 남자 그의 가족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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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상식처럼 여겨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과 경제 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커먼즈의 진정한 속뜻을 설파한다. 2부는 커먼즈가 해체되고 각자도생의 자본주의 세계로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농민으로 대변되는 커머너들의 임금 노동자화, 가족의 해체, 화폐 가치 체계의 세계 지배 등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3부는 세계 짓기의 새로운 방법론으로서의 커먼즈 운동과 그 실천 사례를 살핀다.


좋은 책은 통념을 깨뜨리고 사람과 세계와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선사해 준다. 커먼즈는 보통 공유(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민중의 삶의 토대였던 커먼즈가 사라지는 과정을 추적한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는 커먼즈를 천연자원처럼 말하는 것이 “최선의 경우에라도 뜻을 오도하며 가장 나쁜 경우에는 위험하다”(15쪽)고 경고한다.


저자는 커먼즈를 ‘나누는 것’, 소유 여하와 무관하게 “함께 섞고 나누는 활동, 즉 커머닝(공통하기)”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아직 자본주의의 그물망에 포획되지 않은, 대표적인 커먼즈인 가족 내 분업이나 살림살이 활동을 떠올려 보라. 여기서는 계산, 분배, 기준이 무의미하거나 거의 불가능하다.(당연히 저자는 가사 노동을 임금처럼 수치화하는 관점에 비판적이다.) 가족 사이에는 함께하는 살림과 이를 위한 활동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성채를 굳건히 지키는 주류 경제학의 주요 전제들이 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많은 인류학자와 사회학자가 지적했다는 사실도 새롭다. 필요 충족의 수단으로 출현해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재화나 화폐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는 특별한 증거가 없는데도 일반적인 믿음처럼 널리 퍼져 있다. 저자에 따르면 화폐를 매개로 한 교환으로 살림살이를 꾸리고 일상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은 결코 보편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절대 본성처럼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의 무한 소유욕조차 “사람들이 세계와 그리고 서로와 관계 맺는 특정한 방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산물”(39쪽)이다. 경제학 자체가 완전한 상상 혹은 신화에 근거해 있다고 비판한 런던정경대 인류학과 교수 데이비드 그레이버, 경제학의 대전제 중 하나인 합리성이 기본적인 물리법칙조차 거스르는 비과학적인 내용이라고 본 일본 경제학자 야스토미 아유미의 관점에도 눈길이 간다.


모든 인간이 같은 종류의 가치를 추구하고, 여러 물건이 여러 사람에게 각각 얼마나 효용을 갖는지 일괄해서 계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전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장모는 시장에 가면 가격, 품질, 효용성 등은 제쳐두고 무조건 단골집을 찾아 들어가 장을 본다. 야스토미 아유미는 “수백 수천 가지의 상품이 있는 상점에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들고 들어가서 몇 시간 안에 최고의 효용을 계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41쪽)고 일갈한다.


3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자본주의의 통 안에서 사는 우리는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럽다. 나날이 긍정으로 무장하고 노오오력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하고 실천해 보려고 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이것은 이익을 두고 나와 경쟁하는 (상대로 간주하곤 하는) 동료 때문이 아니다. 내가 취하는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이거나 부정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지도 않았다. 나는 우리를 악무한의 맷돌 속으로 갈아 넣는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 자체가 우리를 일상적인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 지옥도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지금과 다른 새로운 삶을 바라고 꿈꾸는 모든 이가 반드시 읽었으면 한다. 통닭 1마리 값도 안 되는 책값이지만 치맥 10만 원어치 먹은 것 이상의 포만감을 안겨줄 것이다.


나는 당장 우리 학교 동료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려고 한다. 그들과 함께 커머닝하는, 커먼즈로서의 교육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바람을 품어 본다.



* 한디디(2024), 《커먼즈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 빨간소금, 1만 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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