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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21. 2024

성실하게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노력의 배신》(2023, 21세기북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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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한다.” 이 문장을 단도직입적으로 분석해 보자. 성실성은 성격 특성이고, 성격은 타고나는 유전적 특질(그래서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에 속한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높은 성실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아무나 노력하지 못한다. “노력은 근본적으로 자기조절 능력”(167쪽)이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타고난 능력이고 재능이다. 그러므로 어떤(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집중해서 끈질기게 버티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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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타고나는 능력이고 재능이라는 말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공부를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에 좌우된다면 열심히 노력하여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는 일은 무의미한가.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노력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자 믿음에 불과하다. 노력이 학업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가 4퍼센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거로 든 논문은 2014년 잭 햄브릭 교수의 논문이다.


햄브릭 교수의 논문은, 1993년에 출판되어 심리학계에서 1만 1,500번 인용된 안데르스 에릭슨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기념비적인 연구 논문을 20년 만에 뒤집었다. 학계에 미친 충격파도 컸다. 에릭슨 교수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1만 시간의 법칙’이었다. 햄브릭 교수는 이 법칙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에릭슨과 햄브릭의 논문이 다루는 문제는 노력과 재능에 관한 과학적 증거이다.


에릭슨의 주장의 요체는 이것이다. 단순히 1만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 의식과 동기, 전문가의 꼼꼼한 피드백,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방법 등에 기대어 꾸준히 연습(에릭슨은 이를 ‘의도적 연습’이라고 부른다.)하고 노력한다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햄브릭은 노력과 재능이 성과(성공)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3가지 목적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노력이나 연습이 최고 성과에 달성에 몇 퍼센트나 기여하는지 수치화하는 것이었다. 둘째 연습과 성과의 관계가 분야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다양한 분야를 조사했다. 마지막으로 에릭슨의 ‘의도적 연습’ 논지를 고려해 의도적 연습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게임: 26퍼센트, 음악: 21퍼센트, 스포츠: 18퍼센트, 학업: 4퍼센트, 전문직: 1퍼센트 (100쪽)

     

햄브릭 교수가 보기에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지만 그중 핵심은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다. 노력의 영향? 위에 든 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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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브릭 교수에게 “게임에서 노력의 영향력이 26퍼센트라고 하더라도 이를 극대화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박할 수 있다. 2015년, 햄브릭은 최상위 국제 저널인 《심리작용학회보(Psychonomic Bulletin and Review)》에 왜 노력이 성공의 열쇠처럼 보이는지를, 유전과 환경의 관계성 측면에서 2가지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첫째 개념은 재능-노력 연관성(gene-environment correlation)이다. 사람들은 보통 재능과 노력이 상호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할 수 있고,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재능-노력 연관성 개념에 따르면 재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비해 더 노력을 많이 한다. 재능은 원인이고 노력은 결과이다.


특정한 분야에 타고난 재능이 없는 친구들은 어떨까? 재능이 없더라도 열심히 노력할까? 열심히 노력하기 어렵다. 왜?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잘 못하니 그 분야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관찰하면 열심히 노력하는 자들이 성과가 좋은 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현상만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착각한 인지적 오류다. 성공의 진짜 주원인은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다. (110쪽)


둘째 개념은 재능-노력 상호작용(gene-environment interaction)이다. 이 개념의 효과는, 노력의 효과가 재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요컨대 재능이 낮은 사람이 노력할 때와 재능이 높은 사람이 노력할 때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타고난 재능이 높은 사람이 노력하면 10점까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노력해도 4점까지밖에 결과를 낼 수 없다. 타고난 재능이 낮은 사람의 노력의 효과는 타고난 재능이 높은 사람의 노력의 효과에 비해 5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햄브릭 교수는 노력하지 않아도 재능이 있으면 성과가 높은지 살펴보았다. 재능이 있으면서, 이를 기반으로 노력하여 좋은 성과를 낸 경우는 25퍼센트였다. 나머지 75퍼센트는 노력하지 않아도 높은 성과가 나왔다. 똑똑한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열심히 공부해서가 아니고 그냥 똑똑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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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성공이나 성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상과 처벌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3가지 요인은 첫째 똑똑함, 둘째 부잣집 배경, 셋째 노력이다. 똑똑함(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므로 운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나는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는가 또한 내 힘으로 결정할 수 없으므로 운이다. 노력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타고난 재능에 따른다.


운과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재능에 따라 똑똑함이 좌우되고 노력의 효과도 결정된다면, 똑똑하거나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므로 보상을 받고(좋은 일자리, 높은 급여, 긍정적인 이미지 등) 그렇지 않으므로 처벌을 받는(불안한 일자리, 낮은 급여, 부정적인 이미지 등) 시스템은 정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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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성공은 우연이자 운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성공에는 명분이 없다. 성공했다면 운이 좋은 것이고, 운 좋게 거둔 성공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나누는 것이 도적으로 올바른 자세이다. 실패나 실수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므로 사회적 책임,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는 “노력 신봉 공화국”이, 우리가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채찍질하는 일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 김영훈(2023), 《노력의 배신: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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