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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l 31. 2024

틈 날 때마다 하는 일

1


나는 교실에 여백이 조금 생기는 학기 말이나 학년 말이면 틈 날 때마다 학생들과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지난 학기 막바지에는 중학생들이 읽기에 조금 버거운 책을 수시간 함께 읽었다. 관내 기관에서 지원을 받아 복본 30권을 챙겨 학급별로 집중해서 읽고 독후 활동을 했다. 예상한 대로 학생들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낯설고 어려웠지만 신선한 내용이어서 괜찮았다,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2


학교와 교실이 더는 종이 책과 친숙해지기 힘든 시대라는 점을 정말 심각하게 절감하고 있다. 교사들은 책보다 간식을 더 좋아하고, 책을 안겨 주면 노골적으로(?)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나는 아직도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표방하는 교사 모임 같은 데서 쉽고 가볍고 재미있는 책을 더 선호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느 학교와 비슷하게 우리 학교도 특색 사업이라며 '책 읽는 교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지만 대외 홍보용 구호로만 외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작년 초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학급별로 최신간 도서를 더 챙겨 달라고 알침을 튀기며 건의해 성사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교실에 들어간 책들 대부분은 학생이 아니라 부연 먼지의 벗들이 되었다.


3


나는 몇 달 전 학교 전체 행사 중에 중학교 1학년 학생 철수(가명)와 우연히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에 쇼츠나 릴스를 얼마나 보는 것 같아?” “세 시간 정도요.” “띄엄띄엄 보는 거야?” “아니예요. 한 번에 그렇게 봐요.” “선생님은 철수가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그렇게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요. 이렇게 보다가 점점 줄어들 거예요.”


철수는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가 보기에는 거의 습관이 된 듯 스마트폰에서 계속 눈길을 떼지 못했다. 나는 보다 못해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때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말하는 것이라고 넌즈시 말했다. 그러나 철수는 스마트폰을 손에 꽉 쥐고는 연신 화면을 들여다보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철수가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이 꺼져 있었다는 점에 안도해야 했을까. 나는 그와 대화를 마치면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을 떠올리며 내심 철수가 보기보다 의젓한 학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참고로, 나는 2학년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웬만한 어른들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그가 어떻게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4


수천 년 동안 인간 지성의 아성을 지켜온 문자언어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대체되는 세기적 대전환의 의미를 두고 비교적 치열하게 갑론을박하던 2000년대 전후의 우리나라 담론장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디지털화한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른다. 다만 아날로그 세계 특유의 인간 친화적 감성이나 관계, 현상과 사물 인식 과정의 깊이를 디지털 세계에서는 훨씬 더 찾기 힘들다는 점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유의 주장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 같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수업이나 활동이 그 자체로 구릴뿐더러 제대로 해내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교사가 많다. 계속 이렇게 가야 할까.


교육은 본질적으로 보수라는 성채 안에서 진보와 혁신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과거의 아날로그 교육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진정한 진보와 혁신은 이루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 흐름과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학교에서 디지털 교육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과, 그것을 국가 교육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모든 학교에 전면 도입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계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있어야 디지털 교육의 명암을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바탕 위에서 디지털 교육이 학교급별 학생들의 발달 특성에 맞춰 어느 정도의 규모와 수준으로 어떤 시점에 교실에 들어와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진실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럴 때 진짜 교육의 진보와 혁신이 가능해진다.


5


세미나나 강의 등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틈 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두 개의 정보를 소개하곤 한다. 하나는 실리콘 밸리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디지털-프리(Digital-free)’ 환경에서 양육하고, 저(low)-기술, 또는 반(anti)-기술 양육 태도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팀 쿡과 같은 세계적인 디지털 테크 거물들의 오랜 관행이었다는 내용의 신문 기획 기사(Chris Weller, <Buisiness Insider>, 2018년 2월 18일)이다. 또 하나는 “공부하는 문화: 청소년기 책의 노출은 언어능력, 수리능력 및 기술문제 해결능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Social Science Research>, 2018)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이다.


이들 정보에 나오는 몇 가지 사실을 덧붙이며 글을 마친다. 2007년, 빌 게이츠는 아이들이 14살이 될 때까지 전화기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지침을 만들어 시행했다. 집에 책이 65권~350권 정도 있는 가정의 자녀들은, 책이 이보다 적게 있는 가정의 자녀들에 비해 언어능력, 수리능력, 기술문제 해결능력이 크게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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