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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Sep 16. 2023

도마 실험실

(항생제 개발을 위한 곰팡이 배양은 도마에)

토요일, 평일 미루었던 집 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려면 청소기를 청소해야 하는데, 청소기를 돌릴때면 나는 세련된 무선 청소기와 그 무선 청소기를 청소해 주는 청소기청소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아내는 별 관심이 없다.

아내는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다.

아내는 청소기보다 가벼운 빗자루를 더 선호한다.


청소기 손잡이를 붙잡고 앞뒤로 움직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나 역시 빗자루를 사용하는 것이 청소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좀 더 청소하는 느낌이 나는 것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오늘 나는 청소기를 청소하러 배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의자위에는 도마가 보였다.

나는 도마가 이제 막 여름을 지나 푸르름이 절정에 이른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 이파리 무성한 나무와 같이 녹색 곰팡이가 무성해졌다.



'언제 내놓은 것일까?'


청소기에서 나온 먼지와 머리카락을 비닐봉지에 담고 집안으로 들어오며 아내에게 물었다.


"뭘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어, 성공인지 실패인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가?"


"도마를 소독하려 내놓은 거라면, 폭망실패한 것 같고, 항생제를 만들려고 곰팡이를 배양한 거라면 대성공이야!"


아내는 대답 대신 소리내어 웃었다.


웃는 것을 보니 아내는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기 위해 곰팡이를 배양하려던 것이 분명하다.


아내의 대성공을 기뻐하며 청소기를 돌린다.


나는 무선 청소기와 그 무선 청소기를 청소해 주는 청소기청소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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