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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윤정 Nov 20. 2020

골드메달 스파클링

장소에서 찾은 소소하지만 강한 행복

카페에 들어가 메뉴를 고를 때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머무는 곳이 있다. 냉장고에 진열된 제품들이다.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에비앙 생수, 동그란 뚜껑 생수, 요거트, 과일 음료 사이에 골드메달이 가지런히 서있다. 동그란 단지 모양에 작은 주둥이가 있는 음료. 투명한 유리병 안을 노랗게 채우고 있는 사과주스. 내가 카페에서 저 음료를 마실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한참 하다가 결국 다른 음료를 먹던 바로 그 음료다.

그 골드메달이 스파클링이란다. 자극 없이 달기만 한 사과주스가 탄산과 만나면 적당한 데미소다 맛이 나겠지. 난 두 딸들의 캥거루 케어 사이의 20분 남짓한 점심시간을 빵 하나와 골드메달 스파클링으로 채우기로 했다.


병원 본관에서 나와 어린이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환자들이 타고 온 택시, 급하게 내려야 하는 구급차들을 앞에 두고 우걱우걱 빵을 먹었다. 빵은 매일 기분에 따라 다른 종류를 사 갖고 왔지만 골드메달 스파크링은 빼먹지 않고 마셨다. 일반 골드메달이 둥근 유리병이라면 스파클링은 기다란 병에 좁은 주둥이, 그 주둥이를 병맥주 뚜껑으로 막았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뚜껑을 돌려서 열려면 손바닥이 까질 것 같지만 여는 것을 성공하면 금세 마음은 행복해진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3주 후에 시작된 캥거루 케어 덕분에 꼬박 하루 네 시간을 병원에 있어야 했다. 내 아이를 안아주러 가는데 그 시간쯤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태어나자마자 품에 안지 못하고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라고 말하며 절절한 마음을 쏟는 것은 어딘가 어색했다. 내 아이라는 ‘사실’이 존재할 뿐 난 아직 엄마이기보다는 나였다. 갑자기 뚝 떨어진 아이들을 의무로 보듬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병원에서 잘 돌봐준다는 믿음으로 아직까지 나는 내 몸이 더 우선인 엄마였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고, 조리원에서 나왔으나 몸의 붓기는 덜 빠졌으므로 걷기도 불편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 속에 즐거움을 찾는 이유였다. 골드메달 스파클링 먹으러 병원 가기. 커피도 아닌 이 스파클링 음료의 단맛은 나를 꽤 유치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5월에서 6월, 햇볕이 뜨거워지는 시간에 병원 밖 벤치에 앉아 다 들어가지도 않은 배를 한 여자가 빵과 음료를 마신다. 그것도 꽤 진지하게. 그 벤치 뒤의 창 안쪽에 진료를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빵 껍질을 벗기고 병뚜껑을 따고. 혹시나 이따 캥거루 케어를 할 때 배가 고플까 봐, 1차 캥거루 시간이 끝나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점심 드시고 오세요.”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난 충실하게 내 배를 채운다. 딸들은 하루에 2 mL의 분유를 잘 소화시키고, 난 골드메달 스파클링으로 다시 두 번째 딸을 안을 힘을 얻는다.

학교 가기 싫을 때 급식을 먹을 생각을 하면 즐거워지듯, 골드메달 스파클링은 병원으로 가는 똑같은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작은 기쁨이자 사치였다. 그 시간을 힘이 빠졌거나 슬퍼했던 때로만 기억하지 않게 해 준 음료. 잔잔하지만 강한 스파크. 그것이 이 음료의 힘이었다.

I draw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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