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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Apr 16. 2020

오늘이 며칠인가요?

뉴욕주 격리 5주째, 날짜가 의미 없는 일상

1. 

재택근무를 시작하던 시점만 해도 길어야 2 주 정도 되겠지 했다. 뜻밖에 주어진 2주라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밀린 집안일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취미 생활을 곁들여 가며 오랜만에 삶의 질이 높아지나 기대도 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은 알고 있었지만 체감은 더디었다.

텅텅 비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뉴욕, 오른쪽은 소호

2.

첫 2주는 금방 지나갔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가 격리 관련 짤을 보고 낄낄대며 격한 공감과 함께 친구들과 공유하며,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에는 남는 시간 누가 더 생산적으로 쓰는가를 경쟁이라도 하듯 각종 요리, 퍼즐, 홈트 등을 실천하는 비디오와 사진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평상시 잘 사 먹지도 않던 빵을 만들겠다며 제빵 재료를 한 바가지 샀고, 그림을 그린다며 물감, 붓, 스케치북을 주문했다. 헬스장도 문을 닫아 홈트를 하려니 막상 이래저래 기구들이 필요하여 덤벨과 요가 매트 등을 주섬주섬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인 것일까... 나같이 막판 홈짐 꾸미기에 열혈인 사람들 덕에 덤벨을 사는데 애를 좀 먹었다. 온라인에 어지간한 무게의 덤벨은 다 품절이었으니까.)


집에만 있어 너무 늘어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케줄을 짜서 움직였다. 9시 이전에 기상했고, 오후 11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회사 이메일이 조용하다 싶을 때는 빵을 만들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요가를 하고 15평 안 되는 작은 아파트 안에서 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이다 보면 세상은 어느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겠지'하며 희망했다.


3.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바깥 햇살이 달랐다. 공기가 달라져서였을까 순간 외로움이 훅하고 들어왔다. 계절 바뀌고 콧구멍에 바람 들어가는 일이야 매년 겪는 일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자가 격리의 극적인 요소가 더해서 유난히 뼈 솟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외로움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격리하기 전에 남자 친구이라도 만들어놓을 것을...'하고 생각하지만 그게 사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진작에 하고도 남았겠지 하는 생각에 되지도 않는 후회는 이미 접었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잠자기 전 누워 전 남자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지난 시간 좋았던 날을 추억하며 전 남자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막연하게..) 한편으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난리통에 잘 지내고 있나 연락이나 한번 해볼까 싶었다. 번호를 다 지워 정말 다행이었다. 강렬한 유혹은 3주 차에 유독 심했다.


매일 밤.. 아련함과 적지 않은 이불 킥


격리 3주 차에 찾아든 것은 비단 외로움뿐 아니었다. 초반 코로나 발생 당시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했던 언론이 말을 바꿔 마스크를 쓰면 코로나가 예방된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길거리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그로 인해 도시 분위기는 한층 더 삭막하고 사람들은 날카로워 보였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뉴욕이 이제는 활활 타고 있었고, 전 세계 그 어느 도시보다도 강렬하게 타고 있었음을... 뉴욕 말고 다른 곳에 있기를 이렇게 소원한 적은 뉴욕 이사 온 이래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운동할 겸 동네 근처 공원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나마의 정신건강을 위한 외출도 찝찝함은 어쩔 수 없었고 비라도 오는 날은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혀 창 밖만을 내다볼 뿐이었다.


아직도 많은 생필품 구입은 어려웠고, 특히나 화장지는 씨가 말랐으나 간혹, 1겹짜리 저질 싸구려 화장지가 기존보다 3배 높은 값을 달고 진열대를 채우기도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외출이 아니면 밖을 나오지 않았고, 마트와 약국을 이용하기 위해선 흡사 아이폰 4가 처음 발매되던 날 캠핑을 하던 사람들 같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나 또한, 마트나 약국에 갈 때는 마스크와 위생장갑으로 무장한 채 격한 다짐과 함께 집을 나섰다.


4.

오늘이 며칠 인가를 신경 쓰는 일은 진작에 그만두었다. 매일매일이 그저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우리는 아직도 자가 격리 중이었다. 3주째부터 슬슬 불안정해지던 내 심리 상태가 4주째에 접어들어 급 다운되었다. '인간답게 살았던 게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부터 소소하게 누리던 스타벅스 커피 한잔 사 먹을 수 없다는 게 통탄스러웠다. 4주쯤 되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다 해볼 대로 해봤고, 이젠 지겨웠다. 나가서 사람들이랑 만나서 수다 떨고 돌아다니고 음식도 시켜먹고 싶었다. 한 간의 소문에 이 상황이 5월을 지나 6월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주둥이를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 그런 소문 조차 너무 듣기 싫었다.

매일 아침 만나는 주지사 쿠오모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그의 동생 쿠오모


그나마 이런 불평을 하는 나는 나은 편이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으로 현 직장에서 코로나로 인한 연봉 삭감이나 해고는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공고를 띄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래저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로나 때문에 직장을 잃은 사람도 많고, 친한 친구조차 연봉이 삭감되었다. 길거리에는 언제 다시 장사를 시작할지 모르는 레스토랑, 술집들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만약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이들도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보이지 않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이 어지럽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햇볕이 따뜻하면 나가서 가볍게 운동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피는 꽃을 구경했다. 코로나로 나라가 박살이 난 다한들 꽃은 피어났다.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꽃은 마치 '운수 좋은 날'의 '설렁탕'과 같은 아이러니를 선사했다.

올해도 어김없는 벚꽃

5.

이번 주, 5주 차에 들어섰다. 지난주 바닥을 치던 감정 기복선을 위로 당겨 보고자 마음을 재정비했다. 정상화를 향한 조바심을 떨쳐내고 마음을 비운채 순간에 집중했다. 그러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전쟁통에 혼란스러움과 불안한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단지, 생각하지 않고 애써 외면할 뿐. 이제는 뉴스도 거의 보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집 밖으로 맘 편히 나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다만, 생전 겪어보지 못한 소화불량으로 엄청 고생하고 있다는 것과 헬스장에서 하던 고중량 운동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점. 이것저것 집에서 할 수 있는,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사들이다 보니 자가 격리 후 돈을 더 쓰는 것 같은 기분적 기분이 들지만... 현장에서 부족한 의료장비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과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이까짓 것 모두 철없는 철부지(라고 하기엔 좀 늙은 자)의 불평일 뿐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약 5주에서 6주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5주 차에 마음을 내려놓은 것인가? 지난 한 달여의 생활이 new norm(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나고 제자리도 돌아간다고 해도 new norm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역사책의 한 줄이 메워지는 것이고...'2020년 3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시간' 뭐.. 이런 식으로....





이래저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뉴요커들은 낙관적이다.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뉴욕의 모든 이들이 하나 되어 역병과 싸우고 있는 의료진 외 필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종사자들을 위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모두  각자 집에 있지만 창문을 열고 3분간 힘찬 박수와 함성, 진심 어린 응원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끝이 저 앞에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함께 환호한다. 어서 빨리 커피숍 커피를 먹는 날을 꿈 꾼다.


**매일 7시 뉴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링크: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04/10/nyregion/nyc-7pm-cheer-thank-you-coronaviru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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