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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Oct 01. 2017

롯티 : 애완동물 로봇 가게

3화 그 친구를 만나다.

 사실 그 전 주인이 하던 애완동물 로봇 가게도 꽤 장사가 잘 되는 가게인데 주인이 왜 군말 없이 싼 값에 그 가게를 내놓았는지 잘 몰랐다. 그냥 일개 수학강사로 전전하던 내게 그리고 남편에게 늘 큰소리도 못 치고 쥐 죽은 듯 살던 내게 이제야 큰 행운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가게가 대박이여서 지금은 토요일에도 일을 하지만 예전에는 주말이 되어서 아리와 남편이랑 같이 있어야 할 때조차 모든 신경이 그 친구에게 쏠려 있곤 했다. 단정한 턱선을 가진 그 친구는 지금 무얼 할까? 언제 또 보자고 해야 할까?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벽시계의 초침이 차츰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박사과정으로 위상수학을 전공했던 수학자이자 대학 시간 강사인 내가 상대성 이론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 친구랑 있을 때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물리학의 중요 과제인 상대적 시간 개념의 근간을 파헤칠 수학적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하나 순간 망설이곤 했다.

 여하튼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1년 전 지현이 덕분에 이태원의 한 레즈비언 바를 드나들게 되면서였다. 지하 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박형 이어폰형 전화기에서 신호가 왔다. 예전이면 스파이나 끼던 것이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신의 이어폰형 전화기가 있다. 지현이었다. 간혹 돈을 갚겠다는 핑계로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던 지현이 좀 일찍 도착한 내게 무슨 사정을 말하면서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분명 이어폰형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지현이의 호흡이 몹시도 거칠었다. 아마도 그녀가 돈을 빌려주며 호구 잡힌 애인과 어디 모텔에 있는 게 분명했다. 아마도 그 시간쯤이면 평소 그녀의 표현대로 모텔이 떠나가라 신음소리를 내었거나 이미 애액이 봇물 터지 듯 흘러내려 침대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미안하다고 애교를 떠는 지현에게 나는 그저 알았다고만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여러 종류의 여자들(그냥 인간 여성, 나와 같은 눈의 망막에 작은 초박형 컴퓨터를 심어서 보통은 파이보그(Functional Cyborg의 준말)라고 불리는 사이보그(Cyborg) 여성, 여성형 인공지능 로봇들과 양성애와 이성애, 그리고 동성애 성향의 여성들까지 포함해서) 속을 헤치고 바 가장자리에 가서 기어이 하나 남은 자리를 잡았다. 막상 혼자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느긋이 바에 턱을 받치고 기대앉아 우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꽤 리듬이 빠른 음악이 나오던 큰 우드 스피커에서 빌리 홀리데이 특유의 목소리가 지글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 망막에서는 곡의 제목과 가사가 번역되어 나왔다. 나는 무시하고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 망막 기능을 껐다. 뇌파로 조절되는 인공 망막은 끄고 키는 것에 따라 보이는 것이 많은 것이 달라진다. 기능을 끄고 나면 그냥 눈과 같았다.

 평소 안면이 있던 TIMOs 기종의 남성형 집사 로봇이 여전히 바텐더를 하고 있었다. TIMOs 집사형 로봇은 꽤 오래전부터 남편의 회사에서 만들었다. 나는 우리 집에도 들이자고 했지만 남편은 극구 만류했다. 무언가를 아는 눈치였는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설탕이 죽고 나서 우울해하던 나를 위해 애완용 동물 로봇을 들였다.

 그 집사형 로봇은 꽤 멋을 부린 댄디한 옷을 입고는 능숙하게 Kiss of Death라는 그 집 특유의 칵테일을 만들어주었다. 초콜릿 향과 위스키 향이 절묘한 그러니까 처음에 무척 달콤했다가 나중에 너무 독하고 쓴 맛이 나는 칵테일을 혀에 힘을 주며 잔 주위를 조금씩 할 짝 할 짝 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바봇이라 부르던 그 AI 로봇 바텐더가 나에게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귓속말을 해주었다. 그 친구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나는 철저히 그녀를 무시했다. 그러나 결국 몇 시간 뒤 나는 그 친구와 바 화장실에서 딥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AI 로봇을 대량생산하는 대기업 개발팀 엔지니어로 있던 남편은 새로 공격형 초거대 로봇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몇 차례 문제가 있었던 여러 AI 집사형 로봇들의 인공지능 로봇 인권 선언 사건 이후 집사형 로봇들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인간들이 조정석에서 직접 조정하는 산업용 거대 로봇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달라지고 있었다. 이미 다수 거대 로봇들이 인간과 AI와 결합해 거대 로봇을 조정하는 산업용 기능을 베이스로 해 아파트 건설현장이나 빌딩 건설 현장에서 탑 크레인을 대신하고 있었다. 또한 국가 주도산업으로 무기로서 초거대 로봇 개발도 발전하고 있었다.

 새로이 꾸린 남편의 팀은 정부에서 발주하는 33미터 크기의 공격형 거대 로봇 프로젝트를 따는데 목을 매고 있었다. 북한에서 강성대국을 대표하는 <불가사리>라는 30미터가 넘는 공격형 초거대 로봇을 만들어 이미 여러 대를 휴전선 근처에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과 오키나와에 배치된 미군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뉴스에서 북한형 초거대 로봇의 위용이 세계에 알려졌다. 그 사건 이후, 남한에서는 미국의 허락을 받아 공격형 초거대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때가 늦었다. 프랑스와 영국, 중국, 캐나다와 미국 등 각국마다 공격형 초거대 로봇 개발 경쟁을 해댔다. 내가 연구했던 위상 수학의 한 부분으로 초거대 로봇이 움직이는 공간과 위치를 다룰 중요한 자료가 있었지만 남편도 묻지 않았고 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저기 저분이 당신이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

 그 친구가 내게 버번 콕을 보내며 바봇을 통해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요? 나 생각보다 나이 많다고 전해주세요.”

 바봇이 다시 그 친구에게 다가가더니 그 친구 귀에 대고 내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 친구는 손톱에 코발트색 매니큐어를 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두 눈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며 명치끝이 저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느낌이었다. 온몸을 울리는 커다란 우드 스피커로 비틀스의 <옐로우 서브머린>이 흘러나왔다. 그 친구는 귀 뒤로 단발머리를 넘겼다.

 나중에 확인해 본 바로는 발톱에도 손톱과 같은 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양성애 성향이 있는 나는 남자든 여자든 발톱에 바른 매니큐어에 패티시가 있었다. 그녀의 퓨어한 바디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내게는 충분히 섹시했다.

 이 바에는 몇 번 밖에 오지 않았지만, 바봇(Bar-bot 또는 Ba-bot인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bar-bot이겠지 미루어 짐작했다.)이라 불리는 저 로봇은 좀 특이했다. 이상하게 아는 것도 많고 뭔가 비밀스러웠다. 가끔 엉뚱한 소리를 했지만, AI 집사 로봇답지 않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보통 AI 집사 로봇들은 좀 달떠 있거나 지나치게 친절했다. 그런데 저 로봇은 그러지 않았다. 침착했다. 그것은 특이점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지만 나는 문제 삼지 않았다. 인생은 때로 고루하고 피곤하다. 바봇인 내가 자기가 예전에 알던 누군가와 비슷하다며 더 챙겨주었다. 빚쟁이 지현이는 그날 자신의 약속을 어겼지만 그렇게 빚을 갚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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