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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Oct 08. 2017

롯티 애완동물 로봇 가게

4화 귀신 소리가 들리는 가게  1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핵탄두를 장착한 북한형 초거대 로봇 <불가사리>를 다룬 미국의 CNN 뉴스가 레즈비언 바의 초박형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위성의 초정밀 사진으로 찍힌 것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북한 조선 중앙방송을 인용한 장면에서 중년의 여성 아나운서는 마하의 속도로 하늘을 나는 대다가 핵무기를 장착한 미사일까지 부착할 수 있고 자신의 비행을 공격하는 추적 로켓이나 비행기까지 방어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다. 오로지 공격을 위해 만들어진 점이 분명한 초거대로봇 불가사리는 무광택의 검은 초강력 합금 형태로 다소 짧고 굵은 다리와 역동적이고 근육질의 팔 그리고 넓은 등에 비행 슈트가 달려있어 언제든 하늘을 날 수 있었다. 특히 어깨 부위와 팔과 종아리 부위에 방어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경제봉쇄가 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로봇을 만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남으려는 저들의 노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은 이 <불가사리>의 등장에 심하게 불쾌한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어 시스템 구축을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말했듯이 해직 전 남편의 일이 로봇 개발이었다. 남편의 회사인 테이코사 이주승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남편이 해직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주승 회장의 사망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남편에게 물어도 통 별 말을 해주지 않아서 답답했었다. 일각에서는 로봇 3원칙을 어긴 실험용 AI 섹스 봇의 소행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루머로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고도 했고 북한 간첩의 소행이거나 적그리스도를 막기 위한 미국 극우 보수 기독교파의 사주를 받은 킬러의 소행이라는 말도 있었다. 가장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미국 정부의 사주로 이스라엘 첩보기관이 행동했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이주승 회장은 무슨 일을 도모했길래 적을 그렇게나 많이 두었는지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그러다 작년에 엄청난 예산이 투여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격형 초거대 로봇 개발 프로젝트 수주가 그나마 현상을 유지하는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스스로에게 강점이 있던 AI 자동 조정 기능 위주의 프로젝트 개발을 했던 테이코사는 이번 발주의 핵심과제인 초거대 로봇 파일럿과 AI와의 협업이 된 로봇 조정 기능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상대편 회사인 K&H Robotics에 밀렸다.

 남편은 대규모 해직이 진행된 본인의 프로젝트 팀과 함께 어쩔 수 없이 3년 치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명퇴를 택하더니 훌쩍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가 떠났던 1개월은 좋았다. 그런데 남편이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하루 종일 남편과 같이 집에 있기가 싫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매일 삼시세끼 밥을 챙기는 것은 고역이었다. 호기롭게 여행을 다녀온 남편은 집 밖을 나가기 싫어했다. 그리고 음식을 잘 할 줄 몰랐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재료를 다 준비해주고 또 뒷마무리까지 해줘야 했다. 부엌에서 그가 뭔가를 안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었다.  

 그나저나 가을에 접어든 환절기라 요 며칠 끙끙대며 앓다가 오랜만에 레즈비언 바에 나온 참이었다. 목감기라 목이 아프고 가래가 끓었었다. 뭐, 그래도 별 부담이 없이 앓을 수 있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바에서 밤에만 바텐더를 하던 바봇이라는 집사형 로봇을 주말 낮 영업 알바 겸 점장으로 고용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부탁했는데 이 인간이 미쳤는지 이제는 사어가 된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외쳤다. ‘이런! 이기적인 인간!’

 로봇공학을 전공했던 남편은 이제 로봇 따위는 지긋지긋하다며 연극 희곡을 쓰겠다고 했다. 영화 시나리오도 아니고 무슨 희곡이냐며 면박을 주었더니 ‘이런 무식한 여자!’란 소리를 들었다. 그 어렵다는 위상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를 두고 무식하다니 화가 났다. 그리고 ‘이 토끼 같은 인간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겨우 참았다. ‘이 토끼 같은 인간 이야기’는 좀 뒤에 설명하겠다.

 “무식한 여자! 허! 이 남자가 입에서 나오면 다 말이 되는 줄 아나! 무식하긴 누가 무식하다고 그래. 응! 기왕에 하려면 돈이 되는 걸 좀 하라고 말을 하는데, 희곡 그거 누가 알아줘? 안 그래!”

 나이는 남편이 훨씬 많은데 우리 부부는 반말을 한다.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면 그런 말을 안 해.”

 말문이 막혔다. 2028년도 다 저물어 가는데 저 찬란한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시원인 유클리드를 조금 앞서 살았던, 컴퓨터나 AI의 시원이 아니라 DNA쯤 되는 논리학의 기원이 된 철학자였다. 지금도 쓰이는 구닥다리 스마트폰이나 초박형 모니터 디자인 비율인 황금률은 어차피 그의 이론이다. 그보다 몇십 년 뒤를 살았던 유클리드는 자신이 쓴 원론이란 책에서 공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기하학의 원리를 설명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난 비극을 쓰고 싶다고! 이렇게 기계들로 둘러싸인 천박한 세상을 맑게 정화하는 바로 그 비극!”

 “아, 정말! 여보! 일하기 싫다고 하면 되지, 뭔 말이 그렇게 장황해? 알았어. 다시는 가게 얘기 꺼내지 않을 게. 참!”

 그 일 이후 남편과는 잠자리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었다. 처음부터 남편과 무욕적인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신혼 후 얼마간은 잘 지냈지만 TIMOs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해 출시하던 남편의 직장이 너무나 바빴다. 마음부터 몸까지 온통 피곤한 데다가 술까지 마신 사람은 잠시 내 위를 왕복하다 잠이 들었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허무함의 극치를 느낀 나는 다른 방에 가서 문을 잠근 채 미혼 때부터 쓰던 인공지능 바이브레이터로 나름의 절정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그 절정의 질이 달랐다. 나는 영혼이 충족되는 만족감은 사람을 안을 때 비로소 생긴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어느 날,  남편이 토끼와 고양이 새끼를 닮은 아리를 데려왔을 때 잠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남편이 너무 좋아서 웃냐고 물었을 때 대충 얼버무렸다. 남편의 생식 능력을 두고 토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워낙 부실해서 남편을 '토끼 같은 인간'이라 속으로 불렀었던 때가 있었다. 남편이 ‘무식한 여자’라고 나를 불렀을 때 나도 ‘이 토끼 같은 인간아!’라 부르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식 대신 키우던 설탕이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와 무지개다리 너머로 건너갔을 때 남편과는 이제 그만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었다. 슬픔과 상념에 빠져 깊이 우울할 때 남편이 아리를 집에 들였다. 수학자는 수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설탕처럼 하얗고 귀여운 아리를 보았을 때 그만 설탕이 생각이 나서 너무 울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리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아리를 내 마음에 들였다.

 가게를 마치고 우연찮게 그 친구와 바에 왔다가 욜로란 말이 나와서 그전에 남편과의 대화를 꺼냈었다. 그런데 바봇이 관심을 보였다. 낮에 시간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바봇에게 주말에 가게 영업을 부탁하게 되었다. 바봇을 사람보다 더 믿게 된 건 그 로봇 특유의 믿음직함이 있어서다. 어쨌든 남편처럼 신경이 쓰이고 챙겨주어야 하는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잘 훈련된 AI 로봇을 만나기는 참 힘들다. 특히나 바봇은 예전에 반려묘를 키웠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제 AI 로봇들은 자기들끼리 만든 은행에 개인적인 통장을 만들기도 했으며 캐시 충전용 카드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로봇도 나타났다.

 한편, 순수 회화를 전공하며 대학원을 다니는 그 친구를 욕망하는 나나, 실직한 채 욜로를 외치는 남편과 남매처럼 무욕적인 생활을 하는 나나 모두 나인 건 분명하다. 부부가 같은 제품의 컴퓨팅 인공망막을 지닌 파이보그인 것도 분명하다. 그렇게 애완동물까지 인공 지능이 넘실대는 판인데 나는 수술 자국 하나 없는 순수한 몸을 가진 그 친구를 욕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섹스 봇들의 누드화를 그렸다. 오래된 섹스 봇들은 피부에 상흔이 남았다. 뿐만 아니라 초기 섹스 봇들은 인공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주인이 애정이 있으면 거액을 들여 새 피부로 재생을 해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주인들이 더 많았다. 주인들은 그녀들을 버리거나 중고로 팔았다. 그중에 한 달에 얼마씩 돈을 주겠다고 주인과 딜을 해 집을 나와 자유를 쟁취한 섹스 봇들이 생겼다.

 이름이 최다윤인 그 친구는 특히 주인에게 독립해 생계활동을 하는 자유 로봇 즉 여성형 섹스 봇을 초극사실화로 그렸다. 그렇다고 사진은 아니었다. 주인에게 맞아 상흔이 남고 시간이 지나 벗겨지거나 거칠어진 그녀들의 피부를 그린 누드화는 나이 든 여성의 누드를 보는 것과는 좀 더 다른 느낌이었다. 그 친구 말로는 독립생활을 하는 자유 로봇인 여성형 섹스 봇들의 가장 큰 고민은 같은 인공지능 로봇들의 편견이라고 했다. 로봇들끼리도 주인이 있으면 괜찮지만 주인이 없이 혼자 생활하는 여성형 섹스 봇에 대해선 다르게 바라보고 대우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럽산이나 미국산 섹스 봇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좋은 대접받는다고도 했다. 또한 여성형 자유 로봇들은 법적 보호에서 벗어나 있어 폭언과 혐오와 같은 언어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과 심지어 성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자유 로봇끼리 새로운 가족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듣자니 저 세계도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봇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얼마 안 가서 가게의 인공지능 애완동물 로봇들이 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바봇이 일을 하는 주말이면 좀 더 그랬다. 가끔 나는 바봇에게 비상 연락을 받고 불려 나가곤 했다. 애완동물 로봇의 오작동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했다. 더군다나 어디선가 귀신 소리가 같은 게 들리는 가게라니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이제 돈 좀 벌고 계륵을 면하게 생겼는데 순식간에 가게가 망하게 생겼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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