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전과 환전

by mercioon





제대로 된 밥도 먹지 못하고, 30시간이 걸려 아그라에 도착한 뒤 바로 타지마할로 향했던 우리는

반나절 내내 타지마할에 머물렀다 나오니 거의 빈사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럴 땐 한식이지!

물가 비싼 아그라이지만 우리는 한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 하고

불고기와 라면, 그리고 감자전을 시켰다.

메인은 불고기인데 기억에 남는 건 항상 감자전.

다른 한식들은 아무리 흉내를 내도 한국의 맛을 못 따라 가지만,

감자전만큼은 어느 나라를 가서 사 먹든, 해 먹든 똑같이 맛있다.

한국에서는 잘 해먹지도 않던 감자전을 인도 한식당에서 유난히 많이 시켜먹었더랬다.

그래서 인도 여행 중에 한식을 생각하면 양 닭볶음탕이 아닌 감자전이 제일 많이 생각난다.

특히나 하루를 꼬박 굶고 먹었던 타지마할이 조그맣게 보이던 루프탑에서 먹었던 감자전이.



아그라의 물가와 마찬가지로 여행객들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그라에서의 환전이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디유라는 작은 섬에서 축제기간을 보내며 많은 돈을 쓰고,

제대로 된 환전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그라에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다음 행선지는 디유보다

더 작은 마을인 듯 한 오르차였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환전소로 향했다.

여행 때마다 그 몇 백원이 뭐라고 손을 떨며 환전율이 높은 환전소를 발품을 팔아가며 환전했었더랬다.

아무래도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환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서 환전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발리 환전이 압권이었다. 발리에서는 다른 사설 환전소에 비해 이상할 정도 환전율이 높으면 '나는 사기꾼이오'라고 대놓고 티 내는 거라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좋다.

발리를 처음 여행했을 때, 달러 환전을 하러 갔는데 100달러를 하면 돈을 뭉치로 주니 돈을 세는 척하며,

화려한 손기술로 밑장 빼기를 시도했다.

밑장 빼기의 달인들이시라 보통은 눈치채기 힘들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돈을 받고 가게를 나선다면 완전 낭패. 나 역시 여행 한두 번 다닌 어리숙이는 아니라 돈뭉치를 받아서 그 자리에서 세었더니,

돈뭉치를 확 채가며 너한테는 환전을 안 해준단다.

보통은 사설 환전소를 이용하는 나지만, 화려한 손기술을 두어 번 보았더니 이내 질려 그냥 은행에 가서 마음 편히 환전을 하게 되었다. 은행의 환전율이 별로라지만 발리에서는 은행 환전을 애용하도록 하자.

아무튼 한참을 그렇게 환전율에 목메고 이래 저래 발품을 팔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환전율보다는 발품 판 시간을 더 챙기게 되었다. 어느새 돈보다는 시간이 더 아까운 나이가 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그랬겠지만 여행 중 확 와 닿았던 순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였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일 년 건너뛰고 카이스트에 입학할 정도로 똘똘한 학생을 만나 같이 시내로 나간 적이 있었다. 나는 초행길이고 이 친구는 며칠 머물렀던 터라 보고 싶은 쇼의 티켓 예매소 위치와 시내 주요지 정보를 안내받을 참이었다.

그렇게 시내로 나가 환전을 먼저 하기로 했는데, 어린 학생인지라 환전율에 엄청 민감했다.

처음에는 나도 학생 때가 생각나서 몇 군데를 따라다녔는데 아 이 친구 진짜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최저 환전율을 찾아서 거기서 또 환전소 주인과 흥정을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깎아주세요를 유창하게 설명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니 말 다했지 뭐...

야 너는 진짜 뭘 해도 될 놈이구나

점점 흘러가는 시간에 화가 나기 시작할 때,

아 나도 드디어 시간이 아까운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확 와 닿았다.

얘기가 대륙을 건너뛰어 많이 샜지만,

아그라에서 사악한 환 전율 표를 보며 이미 기분이 상한 상태로 있는데,

신이 난 어벙한 환전소 아저씨가 환전율 계산을 잘못해서,

인도에서 환전해 본 중에 최고의 환전율로 환전을 했다.

역으로 가기 위해 오토릭샤를 타고 돈을 세다가 200루피가 날아가는 바람에 돈은 더 잃었지만.

인생 없이 왔다 없이 가는 거.

그냥 기분만 챙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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