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 기차역에서 내 첫 일행이자 마지막까지 남았던 일행과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조금 더 동쪽으로, 일행은 다시 델리로.
사실 일행도 여남은 일정이 있었지만, 조드뿌르에서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서
조기 귀국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행은 인도에서 걸릴 수 있는 모든 수의 병을 의심하며 한국에 입국했을 때,
열이 심해 공항에서 격리 조치당하고, 병원에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며 다시 재 격리 조치를 당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다행히도 생명에 위험이 가는 바이러스가 아니라서 금방 완치되었다고.
도대체 무슨 바이러스의 병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나는 아그라에서 잔시까지 가는 기차 티켓을 끊어야 했는데,
기차의 모든 칸은 이미 만석이고, 짐칸만 남은 상태였다.
4시간 정도만 이동하면 되었기에, 우선 이동할 요량으로 기차표를 끊긴 끊었는데
도저히 온갖 짐과 가축들이 같이 타는 짐칸에는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슬리퍼 칸에 올라 가방을 깔고 앉았다.
한숨 돌리고 나니 이제 혼자 남았다는 생각과 뿔뿔이 흩어진 일행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이 든 지금은 일행들과의 헤어짐도 그리 크게 와 닿지 않는데, 20대였던 그때의 나는 참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슬퍼했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고 있는데 배가 두둑이 나오고 수염 밑으로 심통이 가득한 검사원이 와서 기차표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는 내 기차표를 보더니 이다음 역에서 내려 짐칸으로 이동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울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서러움에 눈물이 둑 터진 댐처럼 더 많이 터져 나왔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인도인 아주머니가 와서 왜 우는 아이에게 닦달을 하냐며 검사원을 나무랐다. 주변에 있던 인도인들 역시 같이 나서서 그를 나무라니 그는 멋쩍어하면서도 다음 역에서 짐칸으로 옮겨 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주머니는 자기 자리로 데리고 가 같이 앉아서 가자며 다독여주시고는 바나나를 하나 까주며 내 등을 두드려줬다. 막 울음을 그치려던 참이었는데 위로를 받으니 눈물이 더 터져 나왔다. 그래서 바나나를 먹고 힘내서 더 힘껏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