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는 유명한 선라이즈나 선셋 포인트가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에
매일 뜨는 해와 매일 지는 해에 열광하게 되는 순간이 자주 온다.
내 기억에 오래 남는 선라이즈는 다르즐링의 타이거힐이고 , 선셋은 브라질의 이파네마 해변의 선셋이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 처음으로 선셋의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곳은 인도의 이 작은 마을 오르차였다.
잔시 역에서도 4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마을은 걸어서 한 바퀴 휘 휘이 돌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가이드북에 나와있음에도 여행자들이 거의 없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오르차만큼 소박하고 아기 가지 한 흙벽의 유적지들이 여기저기 보물찾기 하듯이 콕 콕 박혀있는 아주 매력적인 마을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아침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숙소 앞 테라스에서 바로 보이는 라즈 마할을 한참 동안 그리고, 점심을 먹고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자전거를 빌렸다.
사실 마을이 너무 작아서 자전거는 거의 끌고 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오롯이 혼자 유적지를 빌린 것처럼 조용했다.
여기저기 흙벽의 흙들이 무너져내려 버려진 느낌도 들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통째로 다 빌린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인도가 이리도 조용했던가.
유리가 없이 뚫린 작은 창으로 작은 바람소리와 함께 흙빛의 빛이 들어와 바닥에 흩어진 흙들을 보석처럼 빛나게 했다.
곳곳에 박힌 작은 유적지들을 돌다가 머리꼭지가 뜨거워지는 오후 3시쯤 마을 끝에 있는 라즈 마할로 향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는 그 고요한 성벽에서 나랑 동갑의 한국인 여자애를 만났다.
그녀는 며칠 머무르다 오늘 바라나시로 떠난다고 했다.
며칠간 한국인을 보지 못한 그녀와 이 한적한 유적지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날 거라 예상 못했던 나는 한참을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야기가 마구 뒤섞여 유랑을 하는데 한쪽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까만 실루엣만 보이는 라즈 마할의 지붕 위로 타오르듯이 주홍색 하늘이 펼쳐졌다.
이미 해는 라즈 마할 뒤로 숨어 보이지 않는데 얼마나 붉었으면 하늘이 주홍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하늘 위로 검은 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실루엣의 새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이 작은 마을 아무도 없는 유적지의 성벽에 앉아 그림 상점에서 팔 것 같은 검은색과 주홍색의 강렬한 대비의 선셋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던 그 순간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나랑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현실에 있는 사람인지 그림에서 튀어나온 신기루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마을의 작은 광장에는 작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해가 지는 시간이면 마을 사람들과 낮 시간 내내 보이지 않던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옥상으로 모인다.
이 작은 마을에서 선셋을 보기에 딱 좋은 장소. 옥상에 오르면 그 어떤 안전을 위한 난간도 없다.
그래서 건물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직각으로 내리고 선셋을 보기 좋았다.
쫄보인 나는 무섭기도 했지만, 눈 앞에 거슬리는 게 없으니 꼭 세상의 끝에 앉아있다는 착각도 잠시 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해가 지는 한 곳을 보며 각자의 기분에 취하는 느낌도 좋았다.
작은 건물 옥상이라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보인다.
다들 오늘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낸 표정.
오늘 하루를 위로받는 표정.
한국에서 해가 지는 시간이 오면 밥 짓는 냄새와 함께 뭔가 쓸쓸한 들판의 이미지가 생각나서 우울한 느낌이 들었는데 여행 중에 마주한 선셋은 우리에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위로를 주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