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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Feb 12. 2016

안녕, 호두우유?

4년만에 다시밟은 대륙에서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일단 했다.

그리고 돈을 받았다.'


 막국수집 딸래미의 숙명은 몇살이 되든, 어디에 있든, 여름만 되면 꼼짝없이 불려와 부모님과 함께 24시간을 보내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돈을 받았다. 그 돈은 엄마의 통장에 담겨 있었다. 아니, 돈이 담겨있다기 보다는 통장에 몇백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어쨌든 그 돈을 들고 나는 올해 여름을 또 한번 화끈하게 보낼 생각이었다.


 돈은 있지만 목적지가 없었기에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때, 친구가 중국에 가자고 했다. 일본, 싱가폴, 홍콩을 거치며 "싫어, 안갈꺼야"를 연발하던 내 입은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리고 중국에 가고 싶어졌다. 북경, 리장, 상해.. 뭐 어느 도시를 가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고 싶어졌다. 그것은 순전히 호두우유 때문이었다.


4년 전, 처음 만난 중국의 길거리 풍경 (대련)


 나무 판자 하나만 있으면 화장실이 되어 버리는, 아기 아저씨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아무렇지 않게 모두가 웃통을 벗고 다니고 매분마다 바뀌는 신호등은 그저 장식용 같았던 내 기억속의 중국에 다시 한번 가고싶어졌다. 분명 4년 전, 다시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며 치를 떨고 돌아왔었는데, 중국이라는 말에 갑자기 끌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전히 호두우유 때문이었다.


 그런 호두우유를 상해에 도착한 후 셋째 날이 되어서야 맛봤고, 다른 회사의 우유였는지, 아니면 "중국에서 먹었던 호두우유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이야"라며 여기저기 떠벌렸던 내가 그 맛을 잊어버린 것인지, 조금은 느끼했고 조금은 덜 달았다.

기어코 중국의 편의점에서 만나게 된 호두우유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백화점 화장실에서 목도리를 정리하고 머리를 만지고 옆에 둔 것 같았던 핸드폰을 집었는데,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당황해서 나는 그 화장실에 있던 세명의 청소부 아줌마들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마이 핸드폰.. 메이요.. 어... 유...돈 노?" 어느나라 말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나의 바디랭귀지가 통했던 것인지 한 아주머니는 세면대와 화장실 칸칸을 다 뒤져봐주었고, 나 대신 화장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봤냐며 물어봐주었다. (정확하게는 물어봐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내어주며 뭐라 말을 했는데, 전화기를 빌려줄테니 어서 전화를 걸어보라는 것 같았다. 의심이 많은 나는, 자동으로 로밍이 될까봐 인천공항에서 출국하기 전 USIM까지 다 빼놓았던 터라 전화를 거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 아주머님은 한참을 나에게 "전화해봐! 그러면 바로 해결될텐데"라고 말하는 듯 하다 갑자기 자신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얼빠진 표정으로 화장실 휴지통까지 뒤지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툭툭 쳤다. 전화기를 빌려주겠다던 아줌마였다.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녀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문이 반쯤열린 직원 휴게실에 들어가 한참을 이야기 하다 나왔고, 아무도 핸드폰을 보진 못한 것 같다며 다시 나를 안내데스크로 데려다줬다. 안내데스크에있던 예쁜 중국언니들은 내 사정을 듣고는 어딘가로 여러번 전화를 시도했지만, 어디에도 내 핸드폰은 없었다.


자동 올리기 되어있던 '노트3로 찍은 마지막 사진'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 나에게 핸드폰을 빌려주던 아줌마가 계속 청소를 하고 계셨다. 나를 보더니 핸드폰을 찾았느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 고개를 젓고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할 줄 아는 중국어가 몇 문장 없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 줄이야. 내가 씨에씨에를 연발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녀는 안됐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핸드폰을 찾는 시늉을 해주었고, 나는 괜찮다고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정신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녀들 중 한명이 핸드폰을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알고있던 4년전의 중국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녀들 중 적어도 한명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 같았다. 내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로 누군가를 탓하고 의심하고싶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곳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진짜 중국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 날 밤 극적으로 만나게 된 친구와 빈강대도에서 바라본 와이탄은 말도 안되게 아름다웠다. 온기를 타고 솔솔 올라오는 치킨 냄새에 배에서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빈강대도에서 와이탄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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