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다시밟은 대륙에서의 이야기
막국수집 딸래미의 숙명은 몇살이 되든, 어디에 있든, 여름만 되면 꼼짝없이 불려와 부모님과 함께 24시간을 보내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돈을 받았다. 그 돈은 엄마의 통장에 담겨 있었다. 아니, 돈이 담겨있다기 보다는 통장에 몇백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어쨌든 그 돈을 들고 나는 올해 여름을 또 한번 화끈하게 보낼 생각이었다.
돈은 있지만 목적지가 없었기에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때, 친구가 중국에 가자고 했다. 일본, 싱가폴, 홍콩을 거치며 "싫어, 안갈꺼야"를 연발하던 내 입은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리고 중국에 가고 싶어졌다. 북경, 리장, 상해.. 뭐 어느 도시를 가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고 싶어졌다. 그것은 순전히 호두우유 때문이었다.
나무 판자 하나만 있으면 화장실이 되어 버리는, 아기 아저씨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아무렇지 않게 모두가 웃통을 벗고 다니고 매분마다 바뀌는 신호등은 그저 장식용 같았던 내 기억속의 중국에 다시 한번 가고싶어졌다. 분명 4년 전, 다시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며 치를 떨고 돌아왔었는데, 중국이라는 말에 갑자기 끌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전히 호두우유 때문이었다.
그런 호두우유를 상해에 도착한 후 셋째 날이 되어서야 맛봤고, 다른 회사의 우유였는지, 아니면 "중국에서 먹었던 호두우유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이야"라며 여기저기 떠벌렸던 내가 그 맛을 잊어버린 것인지, 조금은 느끼했고 조금은 덜 달았다.
백화점 화장실에서 목도리를 정리하고 머리를 만지고 옆에 둔 것 같았던 핸드폰을 집었는데,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당황해서 나는 그 화장실에 있던 세명의 청소부 아줌마들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마이 핸드폰.. 메이요.. 어... 유...돈 노?" 어느나라 말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나의 바디랭귀지가 통했던 것인지 한 아주머니는 세면대와 화장실 칸칸을 다 뒤져봐주었고, 나 대신 화장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봤냐며 물어봐주었다. (정확하게는 물어봐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내어주며 뭐라 말을 했는데, 전화기를 빌려줄테니 어서 전화를 걸어보라는 것 같았다. 의심이 많은 나는, 자동으로 로밍이 될까봐 인천공항에서 출국하기 전 USIM까지 다 빼놓았던 터라 전화를 거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 아주머님은 한참을 나에게 "전화해봐! 그러면 바로 해결될텐데"라고 말하는 듯 하다 갑자기 자신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얼빠진 표정으로 화장실 휴지통까지 뒤지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툭툭 쳤다. 전화기를 빌려주겠다던 아줌마였다.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녀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문이 반쯤열린 직원 휴게실에 들어가 한참을 이야기 하다 나왔고, 아무도 핸드폰을 보진 못한 것 같다며 다시 나를 안내데스크로 데려다줬다. 안내데스크에있던 예쁜 중국언니들은 내 사정을 듣고는 어딘가로 여러번 전화를 시도했지만, 어디에도 내 핸드폰은 없었다.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 나에게 핸드폰을 빌려주던 아줌마가 계속 청소를 하고 계셨다. 나를 보더니 핸드폰을 찾았느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 고개를 젓고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할 줄 아는 중국어가 몇 문장 없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 줄이야. 내가 씨에씨에를 연발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녀는 안됐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핸드폰을 찾는 시늉을 해주었고, 나는 괜찮다고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정신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녀들 중 한명이 핸드폰을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알고있던 4년전의 중국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녀들 중 적어도 한명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 같았다. 내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로 누군가를 탓하고 의심하고싶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곳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진짜 중국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 날 밤 극적으로 만나게 된 친구와 빈강대도에서 바라본 와이탄은 말도 안되게 아름다웠다. 온기를 타고 솔솔 올라오는 치킨 냄새에 배에서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