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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15. 2024

어쩌다 서울

왜 서울 학교에 지원했나?

물론 머물 수 있는 거처가 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나는 서울의 학교가 궁금했다. 손주들이 있다 보니 또래 아이들 수준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외손자가 다닐 학교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보아서 뭐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궁금한 거다. 사실 딱 그 학교에 자리가 났었는데 그런 생각을 너무 늦게  지원도 못해보고 놓쳤다.

(천안에도 가보고 싶은 학교가 있다. 손자 호수가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천안만 해도 나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검토하지 않았다.)


10월 마지막 주에 친정 동기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의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일요일에 떠나서 월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동안 다른 형제들은 휴가를 쓰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교원인 나는 학기 중에 연가를 쓰는 것이 자유롭지 않아서 못하다가 내가 퇴직 하자 드디어 육 남매 원 참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배우자들은 포함하지 않고 우리 형제들만 가서 어머니의 그동안 고생하신 이야기도 듣고 공감해 드리는 게 이번 여행의 핵심이었다. 일요일의 리조트는 여유로웠고 월요일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쌍둥이 막내 동생들이 각각 운전을 했는데 우리는 이차 저차 옮겨 타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귀갓길에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내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발신자 지역 번호가 02로 떴다. 나는 시골 살아서 02 전화를 받을 일이 별로 없다. 몇 번 받아보았는데 다 안 받는 게 좋을 내용들이어서 그다음부터는 받지 않다. 꼭 필요한 경우라면 문자 등 다른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생각에 받았다. 뜻밖에 진짜 내게 용건이 있는 전화였다. 전에 지원서를 보냈던 한 학교의 교감선생님이었다. 그때 지원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것과 혹시 어느 날부터 어느 날까지 해당학교 근무가 가능한지 물었다. 물론 나는 어느 때든지 모두 가능한 상태였다.


서울의 학교 중 영어교과전담을 구하는 학교를 골라서 몇 군데 지원서를 보냈었다. 지원 당시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늦게 연락이 온 걸 보면 기간제교사 채용이 잘 안 된 모양이다. 그래서 오케이 했더니 그전에 하루 비는 학급이 또 있는데 그것도 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어차피 아이들 수업을 하려면 사전에 하루 학교에 가보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이왕이면 그날 와서 학급수업도 하고 인수인계도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그게 좋았다.


집에 와서 보니 다른 학교에서도 문자가 와 있었다. 거기도 지원서를 냈던 학교인데 채용은 되지 않았었다. 어느 선생님의 급한 사정으로 하루 수업을 해줄  있는지 물었다. 마침 먼저 대답한 학교 가기로 한날과 연이은 날짜여서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여차저차 내가 서울에 있게 되었다. 갑자기 일정이 바빠졌다.


추기,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오사카 여행은?"

이젠 여행 시기에 제약이 없으니 남들 안 다닐 때 여행을 다니기로 했었다.  남편이 일정을 짜고 항공편이며 숙소며 예약을 해 놓고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깜박했다. 유튜브 들어가서 일본여행 시 유의점, 주변의 가볼 만한 추천장소등 감색하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었으면 생각이 났을 텐데 몰라라하고 있으니 아예 계산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아이쿠, 생각도 못했네. 별일 없다고 벌써 대답했는데... 계약기간이 1월 말 까지라니 예약들을 내년 2월로 미룰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건 어느 정도 예의적 발언이다.  생각이 났어도 나는 분명히 '예스'했을 거다. 남편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예약금 일부를 손해 보면서 모두 취소했다. 변경은 복잡하고 일정을 다시 짜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근무는 시작도 하기 전에 오십만 원이 손해가 났다. 채용신체검사 등 내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데 십오 만 원쯤 들었고 남편이 손해 본 금액이 삼십오만 원 정도 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예의적 발언을 좀 보태야 되겠다.

"미안하게 되었어요. 내가 여행비 좀 보탤게요."

여행비 보태겠다는 말은 진심이라는 것을 남편도 인정할텐데 미안하다는 말은 남편이 믿어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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