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Nov 21. 2024
처음 서울 학교에 갔을 때 약간 난처한 일이 생겼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손님용 실내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부 신발을 신고 복도를 밟을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그때 어떤 이가 들어가는 것을 보았더니 외부 신을 신은 채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여기 실내화가 없던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들어오세요."
"아, 그래요?"
처음에 한 학교만 가 보았을 때는 그 학교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음 학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있던 학교에서는 실내화가 필수였다. 내부를 걸레 청소 방식으로 청결을 유지하는데 거기를 외부 신발로 밟다니 안될 말이다. 현관에는 방문객을 위한 실내화를 신발장에 채워놓았다. 더구나 코로나 기간 동안은 신발만 문제가 아니고 손도 꼭 소독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코로나 전에도 실내를 신발 발로 밟는 것은 큰 실례였고 실내 공간은 어디든지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서 놀 수 있는 정도의 청결을 지향했다.
"아이들도 신발 신은 채 교실로 들어가나요?"
규칙상의 문제가 없다고는 해도 인식상의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 인식을 따를 생각이었다.
"아이들도 괜찮기는 한데 거의 실내화를 신습니다."
복도 신발장에 아이들이 벗어놓은 운동화가 있었다.
"선생님도 실내화를 가지고 오시면 갈아 신고 생활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렇지, 교실은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놀거나 활동을 할 때도 많은데 어쩔까 싶었다. 그리고 복도는 장판 타일로 되어있지만 교실은 마감재가 나무 후로링이어서 거실이나 방바닥 느낌이다. 그러니까 보통 교실이나 업무실까지는 바깥 신으로 올라가고 이후에는 실내화를 신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청소 실무원이 청소하는 것도 보았는데: 흡입형 청소기로 먼지와 티끌들을 제거했다. 그래도 대부분 깨끗하게 유지되는 걸 보면 아마도 미는 걸레도 쓰지 않나 싶다.
왜 나에게 실내화가 그렇게 관심사냐하면 근무하던 학교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아침 등교 시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꽤 복잡했었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하던 방식(현관에서 운동화를 벗어 들고 교실까지 간 다음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는 것)이 아니라 현관에 들어설 때 신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고, 운동화와 실내화를 바꿔 신고, 다시 운동화를 실내화 가방에 집어넣고 하는 방식이어서 일이 학년 아이들에게는 시간도 좀 걸렸다. 운동화는 대부분 부피가 커서 실내화 주머니에 넣기가 어렵다. 6학년 아이들 중 더러는 그런 여러 불편을 피하기 위해 현관에서 운동화를 벗어 들고 교실로 올라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신발 없이 양말발로 어디를 밟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지 실내화를 안 가져왔으면 도로 집에 가서 챙겨 오던지, 엄마에게 전화로 부탁을 하던지, 이도 저도 안되면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래서 학생회에서 실내화를 준비해서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빌려주는 사업도 하고 있다.
한 번은 내가 궁금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실내화 안 가져온 게 왜 그렇게 큰 일이냐고. 대답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화장실 갈 때와 급식실 갈 때가 곤란하다고 했다. 특히 급식실이 곤란하단다. 우리 학교 급식실은 일부 외부공간을 지나서 간다. 화장실 갈 때는 친구에게 잠깐 빌려 신을 수 있는데 급식실은 다 같이 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으니 말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다.
한 번은 아이들이 신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불편의 해소 방안으로 아예 신발장을 현관 외부에 만들까 하고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종종 실내화 규정을 어기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부터 운동화를 신고 내려오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는 환경위생적 손실도 있지만 교육적 손실도 있다. 나는 아이들이 규정을 어기는 경험을 하는 것을 염려했다. 하지만 전교생의 신발장을 만들만한 공간이 안 나와서 하지 못했고 미해결 의견으로 남겨졌다.
그런데 서울 학교를 보고 생각해 보니 교실 올라갈 때까지만 운동화를 신을 수 있도록 허용해주면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학교가방 학원가방에 신주머니까지 아이들 손과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을 덜어주고, 아침의 복잡도도 낮추고,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 자녀의 신발을 벗기고 신기는 데 따른 여러 문제(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 문제, 학교 출입 및 학생보호 규정에 어긋나는 문제, 그 정도 생활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교육적 인식 등)가 그것이다. 거기에서 기존 인식 및 청결유지에서 한 걸음 후퇴하면 편의성을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예전의 학교는 복도든 교실이든 모두 송판 마루로 되어있었다. 마루 밑은 공간이 떠 있고, 그래서 오래된 복도는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고 관솔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있어서 지우개나 연필도막이 빠지기도 했다. 공부가 끝나면 교실과 복도를 깨끗이 쓸고 그 위에 기름칠을 하거나 양초 도막을 문지른 다음 마른걸레로 광을 냈었다. 그러다가 건물 짓는 방식이 바뀌어서 바닥이 시멘트 위에 나무 후로링을 까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복도는 석재 타일이나 비닐타일 마감을 한다. 다른 건물들이나 아파트도 공용 공간이 대부분 그럴 것이다. 거기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교실서 내려올 때 신발을 신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학교는 보통 복도를 걸레청소를 한다. 손걸레는 아니고 기름이 칠해진 대걸레로 미는 방식이다.
어제 아침에 출근해서 복도를 걸어가는데 바닥에 누군가 앞사람이 밟고 간 흙먼지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저런 일이 안 생길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 밖에서 묻어 들어오는 물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궁금하다. 현직에 있을 때 비 오는 날이면 신경 쓰이는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 미끄러질 요소가 없는지였다. 매끄러운 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경우가 생길 터이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과연 어떤 게 더 나은지 잘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복도까지 운동화를 허용해 주는 것을 환영하겠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찬반이 혼재할 것 같다. 애매한 찬성으로는 바로 변경하기 어렵고 확실하게 찬성 의견이 모아진다면 그것을 근거로 변경해도 될 듯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런 결정을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속해 있는 곳의 규정이 어떤지 알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내가 교장선생님이 아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