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코칭의 단골 주제이다. 코칭을 시작할 때 인사부서가 코칭 대상자의 다면평가 결과를 코치에게 준다. 주관식 평가란에서 ‘칭찬을 더 자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는 ‘칭찬에 인색하심’ 같은 평가를 볼 수 있다. 칭찬을 너무 많이 한다는 평가는 보지 못했어도 칭찬에 인색하다는 평가는 자주 보인다. 그래서 이럴 때는 자연스럽게 칭찬을 더 많이 하거나 더 잘하는 방법에 대한 코칭이 된다.
“상무님은 칭찬을 자주 하시지 않나 봅니다.” 내가 김 상무에게 물었다.
“좀 그런 편입니다.”
“왜 칭찬을 자주 하시지 않을까요?”
“칭찬할 일이 별로 없네요.” 김 상무는 멋쩍게 웃었다.
“그럼 어떤 일에 칭찬을 하십니까?”
“일의 성과가 기대했던 거보다 더 높으면 칭찬을 해 줍니다. 애초에 약속했던 만큼 성과를 올렸다면 그건 당연한 거니까 칭찬할 일은 아니지요.”
칭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의 성과가 자신의 기대나 상호 약속을 넘어설 때 하는 것이 칭찬이라면, 그런 칭찬은 평가에 따라 주는 포상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기대 수준을 합격선으로 정하고 그보다 더 잘해야 칭찬해 주니 말이다.
코칭에서 말하는 칭찬은 상대가 어떤 수준에 있든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한 동기부여의 행위이다. 즉, 칭찬은 잘했기 때문에 주는 상이 아니라 지금 잘하든 못하든 여기서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내는 격려이다. 따라서 칭찬은 리더의 임무이고, 필수과목이지 선택과목이 아니다.
나는 김 상무에게 다음 세션까지 칭찬을 많이 해 보는 숙제를 냈다.
“김 상무님, 작은 일에도 칭찬을 많이 해 보겠다고 하셨지요. 어떠셨습니까?”
“하기는 했는데 좀 어색했습니다.”
“어떤 면이 어색하셨나요?”
“별것 아닌 일에 칭찬을 하려니까 ‘영혼 없는 칭찬’을 하는 거 같아서요. 듣는 사람이 오히려 기분 나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상무님. 부하직원 중에 아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죠?”
“네... 가끔 있습니다.”
“아부성 발언을 들으시면 기분이 어떠세요?”
“아부인 줄 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아부에도 영혼이 있을까요?”
아부란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일을 말한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거나 과도하게 칭찬하는 일이다. 아부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여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오도록 하려는 행동이다. 그래서 아부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 진심 없는 칭찬에 영혼이 담기지 않았듯이 아부에도 영혼이 없다.
그렇지만 아부성 발언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아부꾼이 내게 잘 보이려는 의도를 갖고 진심을 넘어서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듣기 싫지 않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그냥 ‘잘했네!’ 하는 한마디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또한 칭찬은 꾸준히 자주 해야 한다. 영혼 없는 칭찬을 자주 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아부꾼은 어쩌다 한번 아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부는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안다. 영혼 없는 아부꾼도 꾸준히 아부하는데 칭찬을 꾸준히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칭찬을 잘하는 사람은 칭찬과 더불어 인정을 한다. 인정은 칭찬과 비슷한 듯 다르다. 칭찬은 행동에 대한 것이고 인정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큰 금액의 수주를 한 이 과장에게 “이 과장, 그 수주 참 잘했어요.” 하는 것이 칭찬이라면 “역시 이 과장이야. 난 이 과장이 해낼 줄 알았어!” 하는 것은 인정이다. 인정이 더해지면 칭찬의 말에 온기가 돌고 영혼이 실린다.
사람에 대한 인정에서 한 단계 더 나가는 것은 그 사람의 성과가 조직에 미친 기여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이 과장, 그 수주 참 잘했네. 난 해낼 줄 알았지. 이번 달 우리 사업부 직원들 월급은 이 과장이 준다고 봐야겠다!” 이 정도 칭찬이면 이 과장은 자다가도 웃음이 날 것이다.
내가 모시고 일했던 회장님 한 분은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칭찬하시는 분이었다. 업무보고를 끝내면 “그래. 수고 많았네. 이 사람 참 훌륭한 사람이야.” 하시는 분이었다. 맥락은 없어도 기분은 좋았다. 어쩌다 혼쭐날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기분 좋게 해 주시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보고하는 것이 꺼려지지 않았다.
퇴사한 후에 회장님을 어느 호텔 로비에서 마주쳤다.
“회장님, 건강하시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 그래, 박 대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말이지... 여의도에서 큰일을 할 사람이 여기 있네...”
“네?”
기분이 좋으면서도 의아했다. 내가 국회에서 일할 사람이란 말씀이신가? 그게 칭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