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민중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시대는 요원한 듯 대립과 갈등의 골은 여전하고 메워지지도 못한다.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조국은 관념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 누구든 탐욕의 사슬에서 자유롭지도 벗어난다는 것도 불가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출처: 소설가 김창환의 '산하를 찾아서' 서문 중에서)
소설가 김창환 씨가 나를 만나기 위해 진도 새섬을 찾은 지가 벌써 5년 전 8월의 여름날이다. 작가는 소설 '산하를 찾아서' 북 타이틀 서체를 부탁하기 위해 서울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려왔었다. "전화상으로 부탁을 해도 되는 것을 사서 고생을 했냐?"라고 묻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섬 작가의 근황도 궁금했고, 바다가 품은 새섬은 어떤 곳일까?라는 호기심도 발동했다."면서 1박 2일 일정으로 진도 새섬을 다녀갔었다.
(좌)소설가 김창환 씨가 불현듯 진도 새섬을 찾았다.
그리고, 김 작가는 매 년 연말에 책을 출간하면서 북표지 타이틀 서체를 석산체로 쓰곤 했었다.
2020년 본격적으로 폐목을 활용, 서각 작품화를 진행하면서 보기 드물게 아파트 현관에 이색적인 문패를 달고 싶다고 다시 연락을 해왔다.
문패가 필요하니 그냥 보내달라고 하면 될 일을 문패를 달아야 하는 당위성을 구구절절 장문의 이메일로 보내왔다.
(소설가 김창환 씨가 보내온 이메일 내용) 지난 이른 봄날 아파트 추첨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와락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흥분으로 차올랐습니다. 우연한 행운이 따라온 것 같은 기쁨이었죠.
‘1004호’
직업군인을 아비로 두었던 큰아이는 여섯 번 전학을 하고서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으니 아이들에게 이사는 친숙한 것이었을까? 서울로 근무지를 옮겨서는 관악산과 우면산을 곁에 두고 여러 번 집을 옮겨야 했는데 이순(耳順)을 지나서야 문패를 걸게 되었던 것.
진도 팽목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새들의 섬새섬 조도에 살고 있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문패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새로 출간할 시집인 듯, 산문집의 제호도 딸려 보냈다.
그는 드라마 징비록 등의 제호를 썼던 캘리그래퍼 분야의 명장이었고 시집과 소설책의 제호를 써주었던 고마운 분이다.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문패도 만들어 재능기부도 했던 그에게 새로 이사해야 할 집에 그 기쁨을 문에 매달고 싶은 호기심을 그에게 전했다. 아파트 현관문에 이름을 새겨 거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었으니 그가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을 특별한 문패를 부탁했던 것이다. ‘가끔 천사들이 놀러 오는 집’
한참 만에 그가 보내준 택배에서 비릿한 바다내음이 번져나고 있었고 이름 석 자가 아닌 한 번도 그도 새겨 보지 않았을 글자들이 새겨져 있던 바다에 버려져 삭아져 가던 폐목에서는 새 생명의 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어느 골짜기에 여럿이 모여서 있을 때 철 따라 계절들이 놀다 가며 나이테를 그려놓으며 그늘도 느리다가 배를 만들려는 아니 노를 만들려는 목수의 손길이 닿은 것은 언제였을까?
바다를 떠돌다가 버려지듯 새로운 정착지를 도모하듯 머문 것이 그가 나고 자란 새들의 섬이었을까? 삭아져 갈 나무둥치에 생명을 불어넣듯 나무가 흘러온 길을 따라가 보듯 그가 새긴 글씨가 걸어 나오는 듯했다.
소설가 김창환 작가 아파트 현관에 폐목 문패가 걸렸다.
이렇듯 폐목 활용으로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서각 비하인드>>
1. 배낭하나 매고 먼 길을 찾아온 김창환 작가...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해질 무렵 본인의 자택에 도착한 김 작가는 배낭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까만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삼겹살과 장어였다. 급히 상을 차리고 삼겹살과 장어를 함께 구웠다. 처음 본 사람과 사람이 소탈하게 마주 앉아 저녁 대신 삼겹살과 장어에 소주 서너 잔을 주고받으며 먼 길 노곤함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2. 다음날 아침 김 작가를 모시고 진도 조도 새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리산 전망대에 올랐다. 크고 작은 다도해의 풍광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새섬의 관광명소 중 하나다. 그리고 대한민국 섬 중에서 113년의 점등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조도 등대'로 안내했다. 등대라는 것이 캄캄한 바닷길을 오가는 선박들의 항로 역할을 하는 것은 어디를 가던지 똑같지만 섬에서의 등대는 조금은 특별함의 상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