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은 들리는 곳이 있다. 동네의 한 복지형 마트인데. 그곳은 물건에 붙은 가격표의 색깔을 따라 돌아가면서 50 퍼센트 할인을 한다. 이번주의 할인색은 녹색, 다음주는 빨간색, 그 다음주는 노란색과 같이.
그날은 검은색 가격표가 붙은 책을 할인하는 날이었던가. 실로 오랜만에, 꽤 괜찮은 품질의 책들이 몇 권 들어와 있었다. 문학동네와 같은, 문학 쪽의 좋은 출판사에서 파는. 고풍스러운(내가 좋아하는 고동색이나 검은색과 같은) 예쁜 편집본의 문학서들이 몇 권 탐스럽게 꽂혀 있었다(피아노 치는 여자등의 책이었다.).
복지형 마트라서, 판매가는 고작 삼사 천 원 정도였다. 하지만 가격표의 색깔만, 이번 주의 할인 컬러와 맞다면 거의 이천 원 정도에 각 책들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컬러가 바뀌는 다음 주 월요일을 기약해 보기로 하고 그대로 돌아서 나왔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월요일에 가보았다. 하지만 그 책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새롭게 맞은 그 주의 할인 컬러도, 눈여겨 보아 두었던 그 문학 책들을 할인해서 살 수 있는 컬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삶은 ‘지금’밖에 없는 것이구나. 다음부터는 그냥 보이는 대로 사야겠다. 지금 눈 앞의 것들을 갖지 않으면 더이상 내것이 아닌 것들로 나의 시간들에서 사라져가겠다.
시간은 다시 흘러 오늘, 그 책장 앞에 또 한번 서게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작지만 소중한, 얼마 만큼의 돈이 들어온 차였다. 이렇게 정신이든 물질적으로든 가난한 날들에, 나는 다 잊어버리고 책들을 사곤 했다. 그런 일을 마술처럼 신비롭게 느끼며 몰두하곤 했다. 책을 뽑아 들고, 펼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채로, 불완전한 채 그대로 몇 줄을 읽어나가고, 그렇게 엄선하여 고르고, 마침내 몇 권의 책을 결제하는 일. 그건 생을 내가 아직 굳게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그때만큼 풍요롭게 책을 집어들 수는 없지만 두터운 털장갑을 낀 손으로, 나는 문득 다시 한번 게걸스러워지고 싶었다. 잠시 책장 앞에서 게걸스러워 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새삼 깨달았다. 게걸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여유와 행복이구나! 그것의 여유와 행복이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거의 난생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늘, 그것이 풍요로움인지도 각성하지 못할 정도로 게걸스러울 수 있었으니까.
게걸스러움, 천진난만함, 순진무구함. 그런 것들은 내면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었던 사람들만, 그득한 사랑을 받은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덕목이구나. 일종의 특권층의 행복과도 같은.
게걸스럽게. 게걸스럽게. 나는 한꺼번에 몇 권씩의 책들을 집어 들었다. 너댓 권씩 한 손에 꽉 들어올 만큼 집아들고, 읽을 만한(그래도 나름의 기준과 취향에 맞는것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책들을 뽑아서 펼쳐보고, 파란 플라스틱 쇼핑 바구니에 넣거나 다시 책꽂이에 꼽아두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3미터 높이의 두 개 진열대를 샅샅이 뒤졌다. 이번에는 할인하는 책들만 집어들지 않았다.정말 읽고 싶은 것, 어쩌면 지금 뽑지 않으면 영영 뽑지 못할 책들을 거침없이, 주저없이 뽑아 들었다. 게걸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