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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r 02. 2024

냄새 에세이

무엇을 말하든 시작은 냄새로


   


킁킁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 모든 글의 시작을 향기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글. 어떤 경험이나 이야기를 사건이나 인물이 아니라 향기로 이해하고 말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향기, 이 주의 향기, 또는 이 달의 향기나 한 계절의 향기를 써나가 보면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용과 형식은 제한하지 않되 시작은 언제나 향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에세이를. 킁킁거리게 되는 문장들로 써 내려가 보려 한다.

   

   

   

스스로 바라보기에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가장 도드라진/어쩌면 거의 유일한 재능은 묘사라고 생각했다. 어떤 경험에 대해 내가 느낀 인상을 표현하는 일을 나는 늘 즐거워했다. 어쩌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경험에 대한 감상을 거칠게, 거칠게 써나가며 흥분하곤 했다.


무채색의 경험은 그러는 동안 색이 덧칠해지고 정말 잘 써진 글은 찰나, 반짝였다. 신비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인상파 화가가 붓터치를 하는 순간들처럼, 꿈꾸듯 쓰다가 지쳐 대충 SNS에 올려버리고 잠들곤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을 반복하며 아련히 느낄 수 있었다. 삶이 아무리 다채로울지라도 하얀 화면에 문장들을 거침없이 채워나가는 순간들의 느낌을 정확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은 몰랐지만, 혼자 문득 들었던 생각이나, 보았던 장면이나, 대화나, 인상, 냄새 같은 것을 묘사하는 법은 좀 알고 있었다. 그런 글을 나름대로는 부단히 써왔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채색을 넘는, 잿빛의 날들이 이어졌다.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다 사라졌다. 영혼의 풀과 꽃들이 산불에 타버린 산림처럼 완전히 전소된 날들이었다.


그러한 날들 속에서도 일기나 에세이라고 불릴만한 글(나는 낙서라고 부르는)을 조금씩 쓰기는 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꿈을 그리는 일도, 꾸는 일도, 꿈도 아니었다. 이전의 설레는 글쓰기는, 그렇게 감쪽같이 내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상하게 변모된, 괴물같기도 하고 징그러운 나방 같기도 한 글들이 희미한 전구 불빛에 붙어 펄럭일 뿐이었다.

   

   

   

물감이 많아도 짤 수 없었다. 뚜껑을 돌려 열어 막힌 알루미늄 뚜껑을 푹 찌르고 팔레트에 짜, 붓을 푹 묻혀서 스케치북에 그려야 하는데. 파리하게 의미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얇고 희미한 4H 연필의 무채색 그림만 그리곤 했다.


무채색, 무채색.

   


그러다가 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사는 게 아니구나. 사는 것은 꿈을 꾸는 일이고, 그것이 없으면 ‘사람’의 삶이 아니구나. 꿈과 삶에 대한 그토록 당연한 비밀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것의 사라짐을 통해서 말이다. 꿈을 꾸지 못하면 뭐 하러 살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면 왈칵, 왈칵. 황량한 꿈의 불모지에서 그것의 부재를 알고도 어쩔 도리 없이 열병 같은 무기력증을 앓곤 했다.


무채색 무채색, 왈칵 왈칵.

무채색-왈칵-무채색-왈칵.

   

   


녹차 비누를 손에 묻혀 씻으면 손에서 녹차 냄새가 난다. 라벤더 사람을 만나면 내 구석 어딘가에도 라벤더 향이 입혀진다. 글쓰기란 어쩌면 향기를 입히는 일일 것이다. 기억에, 경험에, 나에게 말이다.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는 무언가를, 콜드플레이의 색처럼 강렬한 색이 있는 무언가를 써야겠다. 나는 냄새에 매료되는 사람이었으므로, 냄새 + 묘사 = 흥미로운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제는 향수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읽으면 되니까. 공부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면 되니까. 그래서 일단 이렇게 킁킁 원을 쓰게 되었다.


꿈을 킁킁, 냄새를 킁킁. 무채색과 무기력과 절망을 킁킁.  맡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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