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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r 02. 2024

너의 냄새는

고유한 개성




발가락 사이 각질을 긁어내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서 리넨 수건에 다 떨구어 모았다. 그리고는 그냥 그대로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보통은 주변에 있는 지저분한 것들을 다 버리고, 깨끗이 주변을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하고, 향수까지 뿌리고 글을 쓰곤 하던 나였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냥 두고 이렇게 써보고 싶었다. 이렇게 잠을 잤던 작은 방의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그대로 쓰기 시작한다. 한쪽에는 꼬수운 체취가 묻었을 손톱, 발톱, 각질 종합 모음집을 한 곳에 그대로 놓고.




냄새는 개성이다. 사람의 독특한 체취는 비록 그것이 약간의 악취를 머금고 있을지 몰라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취는 악취가 아니다.

   

아마 연애 초반이었을 거다. 그녀는 만나던 내내 딱 한 번 향기에 관해 말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오늘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현실에 관한 시름을 한편에 숨겨두고. 오늘만을 말했다. 오늘 우리가 먹어야 할 것에 대해 말하거나. 오늘 기분이 어떤지. 오늘 무엇을 할지.


서로의 존재가 점점 세상의 전부로 진화해 가던 연애 초기에는 각자에게 설렜던 포인트를 말하며도 했다. 하지만 향기에 관해 말했던 적은 그때가 유일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나는 향기나 향수 같은 것은 약간, 사치스러운 대화 소재였다. 향수는 소비의 최상위 충위에 있는 물건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때는 그랬다. 아직 좋아하는 향수나 서로에게 나는 향기 이야기를 할 만큼 풍요롭지는 않은 때였다. 그녀에게 허락된 여유의 품은 다만 오늘, 하루의 쉼이었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에는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티키타카 티격태격 장난 같은 것만 말하던 그녀였는데. 그날은 뭐가 그렇게 그녀를 설레게 했는지 향기에 관해 말했다.

   

지하철이나 거리를 지나가다 다른 남자가 지나가고 나서 남은 향수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났다고. 이거 A님에게서 나던 냄새인데. 그러면서 불쑥 설레었단다. 그 냄새를 맡게 되자 순간적으로 설레었다고. 사람을 냄새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그렇게 처음 배웠다고 했었나. 아무튼 생각났다고 했었다. 지나치던 어느 남자의 체취에 입혀진 향수 냄새를 맡으며 내가 뿌리던 향수 냄새가 생각나고, 내 냄새가, 내가.

   

   

   

나는 그녀를 떠올리면 아무 냄새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그녀는 적어도 지속력이 좋은, 인상적인 향수를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녹록지 못한 환경이었을 그녀는 다만 한두 번 칙칙, 아주 연하게 향수를 입혔거나, 향이 금방 날아가는 바디 코오롱 정도만 뿌렸거나, 어쩌면 데이트를 하는 날들조차 아무 향기도 입히지 않았었을지 모르겠다. 수수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 생각해 보다 문득 떠오른 것이 은은한 향이 입혀진 식용유 냄새다. 그녀의 인격에선 가벼운 유채향이 났으니까 유채 식용유로 하자. 약간 떡진 머리의 앞머리 같은 곳에 입맞춤을 했을 때 나던. 예쁘고 달콤한 유채 식용유 냄새.

   



친밀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사람의 고유한 냄새가 있다. 만나는 사이이거나 부모가 아니라면 맡을 수 없는 냄새들이 있다. 짙은 향수 냄새는 한두 걸음 떨어져도 날 수 있지만, 손바닥이나 이마나 입이나 눈썹 같은 곳에서 나는 냄새는 반의 반 걸음, 영 걸음의 거리가 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체취다.


누군가에게 나는 은은한 냄새는 그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랫동안 각인되기 쉽다. 차마 향기라고는 부를 수 없는. 누군가의, 꽃이나 풀의 즙이나 기름을 입히지 않은 자연 상태의 냄새야말로 개성의 가장 독특하고 은밀한 부분일 것이다. 난 늘 바로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나, 학문이나, 신이나, 인생의 그런 부분들에 말이다.


베스트셀러나 자기 계발서나 수천수만 개씩 쏟아져 나오는 기성 향수 제품에서 매력이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편향되어 있는 나의 관심 때문이다. 나의 불행감의 한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성의 끔찍한 반복에서.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맥도널드. 버거킹. 이마트. 노브랜드. 홈플러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비슷비슷한 영상들. 말들.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쓰음해 주세요오? 주문번호 확인해 주세요오? 기성, 기성, 기성성의 우울감. 틱톡, 틴더, 인스타그램. 좋아요도 모자라 사랑해요라니.


그리고 진짜 인격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처럼 기괴한 느낌의 도의적 친구 관계나 친족 관계, 교회 신자들이나 각종 매장의 아르바이트생들. 경험할수록 목마르고 채울수록 텅 비어 버린다.  '인생의 낭비'다. 다 지겹기만 하다.



은밀한 냄새를 맡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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