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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r 12. 2024

광고학 I




아주 오랫동안 나의 전용 자리였던 1층의 창가 자리. 고향 같은 이 스타벅스 매장. 가볍게 밝은 햇빛. 휘핑을 추가한 베란다 블렌드. 동네 찹쌀 도넛 맛집에서 산 삼천 원에 열두 개짜리 찹쌀 도너스까지. 그리고 바리스타 바를 등 뒤로 하고, 오늘의 커피와 함께 봉지에서 도넛을 하나씩 꺼내 먹는, 몰래의 감각까지. 어떤 완벽한 구조를 갖췄다.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붉은빛의 햇볕이 높고  창을 뚫고 강의실 안으로 내리쬐는 장면이다. 강의실에는  외에도 생기와 희망을 머금은 젊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차,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광고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남자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교수님은 교양 있고  있는 말투로 ’ 커튼을  쳐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면 오후의 강의실 안이 거의 완벽하게 암전되었다. 바깥의 빛이 워낙 강해 암막 커튼이 살짝 벌어진 틈으로 침투해 스며들어온 창가 자리의 엷은 햇빛을 제외한다면.  새까만 설렘. 오후 시간대에 실내 공간이 별안간 이토록 새까매질  있다는, 비현실적인 현실감이 이상하게 나를 설레게 했다. 강의실 공간 안의 약간 차가운 공기의 긴장감과 함께,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숨을 죽였다.  거의 1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이어  없이 재생되는 광고 모음 감상 시간. 당시, 학생으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깐느 광고제 수상작들이 그리 선명하지만은 않은 빔프로젝터를 통해 하얀 스크린 위로 상영되었고, 나는 흠뻑 빠져들어 그것들을 음미했다.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짤막한 광고들을 나는 어떤 영화보다  두근거리며 보았다. 10초에서 30 내외의 필름 안에서 느껴지는 기발함과 위트 같은 것들이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이어서 키가 크고 건장한 교수님이 광고학의 내용에 대해 무언가를 뜨겁게 이야기하셨고, 창가에 있는 1인용 일체형 책걸상에 앉아 있던 나는 작은 책상 공간 위에 노트와 펜을 올려놓고,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발치까지, 온몸으로써 긴장하며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교수님이 손수 강조하시거나, 내가 느끼기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내용, 또는 중간고사를 대체하는 조별 과제에 대한 공지사항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라도 놓칠세라, 볼펜을 집어 들고 대학 노트에 꾹꾹 눌러써나가며, 강박적으로 집착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카튼을 활짝 열면 창 너머 밖으로 옅은 황토 빛깔의 대학 운동장이 보였다.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운동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다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 순간들이 내 내면과 영혼의 넓이를 넓히는 기억들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청소를 자주 하지는 않아 무심하고 레트로하게 뿌연 투명도를 가진 창을 뚫고, 어느새 햇볕이 강의실의 왼쪽 창가 자리 부분을 점점 크고 포근하게 덮으며,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노란색이 점점 사라져 가는 짙은 붉은빛. 햇볕의 붉은 빛깔 정도로 보아 아마 4시에서 5시 사이 정도의 늦은 오후였을 것이다. 돌아보니. 행복했다. 그건 정말 가슴이 저리는 행복감이었다. 오금이 다 저릴 정도의 설렘을 느끼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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