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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r 22. 2024

연희동의 검푸른 푸르름





나는 어디까지 목말라하는 걸까.

나는 어디까지 목말라하는 걸까.



오래오래전이었다. 연금을 말씀하시던(지금부터 우리 교단에서 사역을 하면 은퇴하기까지 15년을 사역할 수 있기 때문에 연금 충족 기간을 딱 맞게 채우고 은퇴할 수 있을 거라고-육십몇 세 이후에는 매달 은퇴 연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다행히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솔직히 약간 솔깃해했었다. 그렇지마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당장의 나의 관심도, 그리고 장래를 바라보더라도 역시, 나의 아득한 꿈이 전혀 풍요롭거나 안정적인 세팅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내 안의 목마름이 그 정도의 눈높이나 깊이가 아님을 목사님과 마주 앉아 만 육칠천 원을 호가하는 한방 반계탕을 떠먹으며 실감하고 있었다.


후루룩 후루룩. 뚝배기 그릇을 다 비우기까지 한약 냄새가 나는 반계탕 국물을 그렇게 한참 동안 떠먹으면서, 목사님과 마주 앉아 있던 나의 영혼은 껍질뿐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패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 식의 인생에 자신을 내던질 의사가, 그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청담동의 젊은 부자처럼 시크하고 정말 콧대가 높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기도 했던 것 같다. 매달 적당하고도 든든하게 나오는 사례비를 품에 넣고 동네 한 바퀴의 김영철처럼 맛집 사장님들과 허허 웃으며 익숙한 인사를 나누면서, 지역 교회의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백숙을 뜯어먹고, 작은 잔에 담긴 인삼주를 들이켜고, 국물을 떠먹으면서 지낼 자신이. 한평생을 한 칸씩 움직이는 체스의 킹처럼 지낼 자신이. 어떤 미각의 환희를 인생의 정점처럼 느끼고, 몸을 살 찌우기나 하면서. 일생을 푹익은 반계탕처럼 살 의사가 나의 목구멍에는 전혀 없었다. 로컬 맛집답게 너무나 맛있고 속까지 든든했지만 왜인지 그리 깊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즈넉한 연희동 길가를 떠나 신촌의 대학가를 향해 걸어 나가는 동안, 차가 휙휙 달려 지나다니는 황량한 찻길가에서 어슴프레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보며 어떤 막연함과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우울했으며 약간은 살랑거렸다. 누가 그렇게 걸으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땅바닥이 자기 세계의 전부인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그렇게 신촌의 언덕배기 등지를 걸어 나갔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수도 없이 당차게 앞으로 내차기만 하는 발끝을 보며 생각에 잠겼. 나는 어디까지 목말라하는 걸까. 나는 어디까지 목말라하는 걸까.


그러다 불현듯 어딘가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렸다. 길가 왼편의 학교 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가가 보니 와이 대 한 구석에 있는 큰 운동장에서 초등학교 운동회 예행연습처럼 대열을 짓고 서서 무언가를 외치는 대학생들이 내려다 보였다. 아, 한 폭의 청춘 필름 같은 장면이었다. 피가 돌고 깊은숨이 쉬어졌다. 무언가를 참을 수 없었다. 검뿌연 바닷길에서 사이렌 마녀에게 홀린 어부처럼, 나는 그곳으로 가까워지는 길을 무작정 찾아 내달리듯 걸어 들어갔다.


라이벌 대학과의 체전을 대비한 시기인 듯 어둑어둑한 저녁에 스탠드가 환히 비추는 운동장에서 하얗고 푸른 응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열띠게 응원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치면서 팔을 뻗어 당찬 동작들을 반복하며 입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는 그들을,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한동안 또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십여 미터쯤 먼발치에서 힘차게 발을 구르고 손을 돌리며 몸짓하는 그녀들의 생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또 나의 몸짓은 무엇인지 몰라 계속해서 답답해하면서. 또 그토록 놀라운 푸른 대학생의 생기에 설레하며 경이롭게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추상의 답을 얻고, 또는 얻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문득, 이토록 가난한 나는, 왜인지 부자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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