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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Jun 05. 2024

까눌루



까눌루 하나라도 먹어



선풍기를 틀아놓고 빙빙 돌며 sns만 뒤져보고 있었다. 그러다 화장실을 가고, 다시 옥탑방에 돌아와 방바닥에 앉아서 sns 글들을 스크롤 다운하며 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누워서 보려고 할 때, 자정이 넘어 갔던 편의점에서 사온 까눌레 젤리가 생각났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까눌루 하나라도 먹어.


나와 늘 함께 있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의 목소리였는지, 나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은 틀림없이 엄마의 것이었다. 나는 여느때처럼 먹고 싶지 않았고, 먹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먹는 것을 귀찮아 했고 엄마는 늘 멕이고 싶어 했다. 지금은 더욱 무기력하고 귀찮아져서 또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고 누우려고 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까눌루. 까눌레가 아니고. 캐리카. 캐리어가 아니고. 엄마였다. 늘 먹이고 싶어하는 엄마. 먹는 것도 귀찮으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느냐고 하던 엄마.


까눌루 하나를 입에 넣고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는 이 순간을 동결시키려 글을 쓰는데 눈물이 관자놀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눈물이. 도무지 멈출줄 모르는 뜨거움이. 이런 사랑이라면, 됐다. 다 됐다. 다 됐다는 생각을 했다. 영원한 안도감이었다.



나는 이게 신학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신학은 멕이고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래야만 했고, 그 창살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일 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학교 삼학년 때 선생님이 칠판에 분필로 그리던 해브 빈 피피+아이앤지로, 안에 빗금이 쳐진 단단한 벽돌의 네모 모양 시제처럼. 이렇게 뜨거운 가슴을 맞대어 사랑받은 사람이 그 문드러지는 사랑의 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건 운명적이었다.


완전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사랑은 그런 식으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부둥켜 안아 언 맘을 녹이고 새 힘을 주는 것이었다. 어떤 어둠과 죄도, 두려움도 다 이길 수 있는 것. 구원이었다. 감히 하나님의 구원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사랑이리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몸소 알 수 있었다. 아담이 하와를 알았다는 ’야다‘(히브리어로 알다)적 체험으로 체화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 사랑은 신학 공부로써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만 정말 알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소와 몸소의 전승으로. 그렇게만 전파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포하고 구원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복음은 하나님이 선포하시고, 나머지는 내가 사랑으로 채우며 책임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강야구의 김성근 감독을 넋을 놓고 보곤 했다. 그에게서는 엄격함과 고지식함, 그리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정감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그것은 엄마와, 엄마가 이따끔 말한 외할아버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난 그 사랑에 중독되었고, 취해 헤어나올 수 없었고, 그것이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아니. 이미 나는 그것이었다.


그렇게 용기있게 살아야 할 것만 같은데. 아득한 신앙과 신학의 선후배와 동료로부터, 아직도 희마하게나마 끊기지 않는 응원과 기대를 받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나는 여전히 주목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랑을 먹고 꽬꼬닥 죽어버려도 좋겠다는 생각만으로, 또 아무래도 좋겠다는 막장의 생각만으로, 또 사무치는 그리움만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무언가의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면서. 그대로 멈춰서서 정지해 있다. 매일 조금씩 녹는 얼음 동상이 되어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처럼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있다.


은하수처럼 눈부신 수많은 까눌루들 때문에. 이렇게눈이 매운 날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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