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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Jul 07. 2024

굳게 다문 입술 고지식함을 사랑하는 마음



방앗간을 참지 못하는 참새처럼 드나드는 한 중고서점 위에는 이따금 어떤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가 보인다.

어느날 그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가 내가 세워둔 자전거를 밖으로 옮기시려고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 제가 옮길게요.

- 그쪽 꺼에요?

네. 죄송합니다아.

 



그 아저씨가 건물 관리 일을 맡아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따라 아마 거의 처음으로 자전거를 건물 현관 안쪽 깊숙이까지 들어오도록 세워두었다. 소심한 만행을 처음 저지른 날, 때마침 아저씨가 발견하시고 자전거를 밖으로 옮겨두려고 하셨던 것이다.


때마침 나도 나가려던 참에 그 장면을 보았고, 나는 죄송하다고 얼버무려 말씀드리며 얼른 자전거를 밖으로 빼서 타고 달아나려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굳이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니, 아실 만한 분이.. 여기다 자전거를 세워 두셨어요. 여기다 세우시면 안 돼요. 밖으로 완전히 빼서 세워놓으셔야지. 블러 블러.


아저씨는 주변 사람들 창피하게 투박하게 너무 큰 목소리로 핀잔을 주셨다.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적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이 고지식함.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사촌 동생이 그랬고, 또 한 친구가 그랬다.


익숙한 피로감에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나는 다행히도 곧 되찾았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성격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 작은 옳고그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하나하나 바로 잡으며, 그것을 꼭 말로 다 해야 하는 인격적인 특질.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선한 사람들이곤 했다. 큰 일을 할 성격은 못 되지만, 맡겨진 일은 한 자리에서 우직하고 미련하게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센스가 부족해 일을 잘하지는 못한지만. 어쨌든 그들의 듣기 싫은 잔소리와, 사랑스러움은 어떤 역치를 그리며 나에게 묘한 애틋함을 자아낸다.




아마 나에게도 어떤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비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든지 앞쪽에 다른 자전거가 있다든지 하는 등의 이유가. 나도 지지 않고 넉살을 부리며 왜 자전거를 거기 세워두게 되었는지 은근슬쩍 핑계를 댔다.


거기서 멈췄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저씨는 자꾸 말씀을 이어 가셨다. 자전거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관해서 구구절절 할 말씀도 참 많으셨다. 그러면서 꼼꼼히 나를 살피려고 하시는 제스처도 느껴졌다.


매너 거리를 유지하며 적당한 선에서 친절히 들어드리려는 내게 아이 컨택을 동정한다든지,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살핀다든지, 깔끔한 성격의 내게는 약간 게걸스럽게 느껴지는 어떤 붙임성으로(또는 그것을 가장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하시는 듯 했다.


자전거 좀 약간 안쪽에 세워 두었다고 이렇게 끝까지 아득바득 할 말을 하려고 하는 성격이 싫기도 했지만, 이제는 보기 드문 이 고지식함이 불쑥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들의 세계에서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제 나는 그것을 끌어안고 이해할 수 있는 품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그의 고지식함은 또 다시 그만 가지는 어떤 인상적인 고지식함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렀다. 조금 전 오랜만에 그 아저씨를 뵈었다. 그때의 느낌들이 고스란히 생각났다.


아저씨는 그 고지식한 표정 그대로였다. 비오는 날, 어떤 건물 관리의 일들로 분주한 듯 보이셨다. 오늘 따라 그의 고지식함이, 옆 시선에서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와 굳게 다문 입술이, 다시 새롭게 마음에 들어왔다. 그 옆모습을 본 순간 글로 남겨놓고 싶었다. 새겨두고 싶은 이야기들과 함께, 한 압축적인 문구가 떠올랐다. 굳게 다문 입술, 고지식함을 사랑하는 마음.




문득 까닭없이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잔소리에 반비례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들을 수 있는 잔소리의 총량을 다 써간다는 뜻인 걸까.

내 앞에 남은 잔소리는 얼마일까.

잔소리가 사라져간다.

고지식함이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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