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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Nov 14. 2024

영원히 고삼

수능 날이다.


왜 그런지 수능 날만 되면 고삼 때로 되돌아간다.


새벽 내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거의 밤을 새다 시피 하고 꼭두새벽처럼 일어나 찬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가 택시를 잡아 탔다. 그렇게 도봉구의 낯선 모 중학교에 갔던가.


그 날 아침의 공기가 생각난다. 그 긴장감과 냄새. 차가움, 그리고 뜨거움.


깜깜한 새벽에 몸을 일으켜 부지런히 준비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여느 등굣길처럼 빠듯했다. 헐레벌떡 뛰어가 지금도 그대로 있는 상계역 부근의 미니스톱 앞에서 택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들이마시던 차고 쨍한 새벽 공기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뜨거운 몸에서 올라와 입으로 나오던 입김. 떨림. 열아홉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기만 했던 극한의 공포감과, 다 끝났다는 슬픔과 안도감 같은 것.


겨우 택시를 세워서 뒷문을 여는데. 왜 그랬는지 울컥거리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신없이 네모난 교실에서 하루종일 수능을 치뤘다. 시험이 다 끝났고. 놀랍게도 늘 바빴던 엄마가 와있었다. 엄마 혼자. 나를 기다렸다. 이 멍청한 아들이 뭐가 좋다고.


엄마와 아빠, 동생과 형, 친구들. 상기된 기운. 화목한 목소리들. 붐비는 인파 속에서 오도카니 서 있었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속으로 생각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엄마는 새까맣게 몰랐겠지만 내 점수는 내 아이큐랑 별로 차이도 없었다. 비싼 사립고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를 통째로 말아먹은 나는 마킹이나 제대로 했을까.


그만. 마킹 그만하세요. 싸인펜 내려 놓으세요. 모두 두 손 머리에 올리세요. 지금부터 머리에서 손 떼면 부정행위로 간주합니다.


수능을 혼자 바칼로레아처럼 봤다. 수성 싸인펜 칠도 제대로 못 채운, 구멍 숭숭 뚫린 답지에서 손을 떼고. 숨을 고르며 고요히 작은 오엠알 답지를 바라봤다. 허탈함과 후련함이 뒤섞인 기운이 봄 아지랑이처럼 새어나왔다. 그토록 치열했던 고등학교 생활이란 다 뭐였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만 부유했다.


그렇게 노원역에 와서 고기를 구워 먹던 저녁. 난 수능보다 고등학교 생활 3년보다 훨씬 더 소중한 무언가를, 뜨끈한 무언가를 다 흠향하고 있었다. 고기 냄새. 왁자지껄한 고깃집 소음. 이 따듯하고 뜨끈한 공기들.


이유를 알 수 없이 가슴이 아리는데. 엄마 앞에서 울 수는 없었고. 엄마의 시선만을 느끼며 마주 앉아 고기를 삼키고 또 삼켰다. 대신 완전히 충만했다. 결핍이어서 오히려 더 충만했다. 이것으로 됐다. 무언가 다 꽉찬 것 같았다. 이제 못할 것 없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는 죽고 싶을 만큼 미안했는데. 이 모든 걸 느낀 나는 다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펼쳐진 생에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없었다.

.


늘 회사에 가느라 중요한 순간들을 많이 놓친 엄마는 왜 그랬는지 그날만큼은 직접 왔다. 휴대폰이 있어 뭐가 있어, 그냥 학교 정문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나를 낚아채서 만난 거였다.


그야말로 열아홉의 근자감이었지. 무슨 근거가 있었겠는가. 그냥 그때는, 그날 하루는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이, 나는 아주 중요한 감정이리라는 것을 알았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분명하고 선명한 힘의 실체였다.


아직 학교를 채 졸업하지도 않았고. 미래는 암담하기만 했는데. 이상하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이 나는 늘 수수께끼 같았다. 평생토록. 왜 그렇게 그 짤막한 청춘의 한 시기가 나의 생을 지배하는 감각이 되었는지.


노원역의 밤거리는 나와 똑같은 감정에 차오른 고삼 아이들이 명동처럼 붐볐고. 이 세계 전체가 나를 껴안아주고 있는 것만 같은 착시적 황홀경에 빠졌던 수능의 밤.


중년의 나는 그날만 되면 똑같이 가슴이 뛴다. 그날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날들을 박동한 심장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계속 묻는 날들이다. 기억도 안 나는 어느 여자애의 말처럼, 지금도 고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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