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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Dec 07. 2020

반장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

나는 학교 다니면서, 반장, 부반장, 실장, 부실장을 참 많이 했다. 사회생활하면서, 국민학교 때 반장이 더 중요할까 대학교때 과대표가 더 중요할까? 국민학교 때 반장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과대표는 선택받은 누군가이거나 엄청난 권력을 부여받을 준비가 된 자라 생각하기 쉽다. 내 생각엔 흥미의 영역이자 각자가 추구하는 ‘다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반장은 피곤하지만, 보람도 있고 선생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 나와는 달리 국민학교 시절 반장은 부모님께는 피곤한 일이었다. 나랏님, 선생님, 부모님 순서로 높고 낮음을 이야기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더불어, 대놓고 무언가를 바라시는 선생님들, 촌지문제, 입시비리, 성적비리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부모님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 된다. 두분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적도 있다. ‘내일 호원이 3학년 봄소풍인데, 반장인데 뭐해야하지 않겠어요?’라는 어머니의 질문에 아버지는 ‘그런거 하면 안되다’고 단호하셨다.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문제도 없고 그걸 해결해야할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선생님과 그러지 않은 선생님이 계셨다. 대놓고 돈 밝히는 분도 계셨다. 지금은 부정 청탁 금지를 뜻하는 김영란법이 있다. 오죽했으면 법률까지 만들어야 했겠냐 싶지만, 잘한일이라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봄소풍, 가을소풍을 가는데, 선생님이 혼자서 김밥을 드시고 있다. 음료수도 줄수 없다. 나랏집 다음의 높은 선생님인데, 너무 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제도가 우선인지, 개인의 창의성이 우선인지 헷갈릴때가 있다. 교도소가 있으니 범죄자가 생기는 것일까? 범죄자가 있으니 교도소가 생긴 것일까? 나는 미혼의 선생님들이 본인이 만든 김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수 없었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은 ‘반장은 어떤 음식해왔어?’라고 하는건 잠깐 ‘깜빡잊고 안가져 왔는데요’라고 넘어가면 된다. 난처한 상황은 잠깐이지만, 총각선생님이 김밥을 못챙겨와서 쩔쩔매는 모습은 안스럽기 그지없다. 그마저도 추억이다. 분명한건 어릴적부터 반장을 해온터라, 봄소풍, 가을소풍, 스승의 날, 가을 운동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밉상 선생님께는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께 아무것도 못해드린다는 것. 그래도 반장 부모님이니까 가끔은 학교에 오는게 옳지 않냐는 내생각. 이로 말미암아, 나는 2학기 반장 부반장은 거의 없었다. 1학기때 반장 부반장이 되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학교에 오지 않으시는 부모님, 2학기때는 연임제도와 관계없이 그냥 출마 자체를 포기했다.

부모님이 학교에 오지 않으신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일단, 학교에 가는 부모님과 그렇지 않은 부모님으로 나눈다. 학교에 갈때는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므로, 빈손으로 갈순 없다. 빈손으로 가지 않으면 선물이나 음식, 기타 물질적인 것을 들고 가야하므로, 그것을 받은 선생님은 자연스레 ‘무언가 받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 티가 나면 다른 아이들과 차별이 되고, 그로 인한 사소한 갈등의 씨앗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이 생기면, 그 아이가 자라 선생님이 될 수 있으므로 ‘기회의 평등’ 관점에서 ‘학부모의 학교 방문’은 지양되어야 했다. 두번째 이유는, 무언가 바라는 선생님에게 ‘바라는 걸 줘서는 안된다’는 부모님의 교육 철학이 있었다. 선생님은 은사(恩師)가 되어야 한다. 학생이 느끼기에 은혜를 입었다는 느낌을 받을 선생님이라는 위치가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는 폄하되는건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사역시 직업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가르침을 주는 교사로서 맡겨진 책임과 학생 마음속에 괜찮은 경험 두어가지를 안겨줄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 먼저 태어났다고 선생(先生)님이 될수 없다. 먼저 태어난 이유 이외에 선생님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차별되어야 한다. 다른 직업보다 더 ‘정직’해야 한다. 지식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하고,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져야 한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 그 이상이라는 ‘굴레’를 얹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금까지 나를 돌봐주신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까지 성장했던것 같습니다. 한분한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바라며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유치원시절에 도움주신 차선례 선생님, 국민학교 1학년과 2학년 때 훈민정음을 알려주신 권점규 선생님, 3학년 이광식 선생님, 4학년 이영교 선생님, 5학년 1학기 허원도 선생님, 5학년 2학기 선생님 죄송합니다. 성함을 잊어버렸습니다. 전학오고 적응하느라 선생님 성함보다 다른 친구들 이름을 기억하느라, 부디 용서해주시구요. 6학년 김기영 선생님, 중학교 1학년 김정옥 선생님, 2학년 이경희 선생님,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을 같이 보낸 권오택 선생님, 2학년 권상덕 선생님, 3학년 오석희 선생님)  시골 국민학교에서 이뤄질수 있는 부정행위가 얼마나 클 것인가, 넉넉치 않은 공무원 집안에서 얼마나 많은 촌지를 제공하겠냐만은, 부정(不正)은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다. 그러므로 ‘정직한 직업’인 선생님께 세속적인 유혹을 기대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부모님의 뜻이 반영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반장이 되었다고 해서,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봄소풍, 가을소풍이라고 해서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일은 없었다. 반면, 가을 운동회나 입학식, 개학식에는 빠짐없이 오셨다. 모두가 다 모일거라 예상가능한 이벤트는 참석 하셨지만, 행여 오해가 있을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반장인 나는 봄소풍때 존경하는 선생님께 아무것도 못해드리는 내가 좀 서글펐다. 벼슬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장인데, 반장도 아닌 애들은 선생님께 이것저것 심지어 도시락까지 준비했는데 말이다. 도시락을 준비할 수 있는 요리솜씨, 시간, 여유도 없었지만, 부모님께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시려거니 했다. 시간이 지나니 괜찮았다. 소풍가는데 내 도시락 들고 가기도 힘든데, 선생님 도시락까지? 힘들다. 잠깐 미안한 마음이지만, 각자 밥은 각자 해결하는게 좋지 않은가 생각을 했다. 그러니 마음도 편했다. 도시락 안싸왔다고 삐진 선생님 한분도 못봤다.  좀 이른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인 5학년 봄소풍에 모인 대의원 어머니들은 ‘반장 엄마는 이번에도 안오셨나봐?’ 이건 듣기 곤란했다. ‘나를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부모님 욕하는 건 못 참는다’는 반응을 해야하지만, 이야기의 전후를 다 자르고 ‘반장 엄마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안하나봐?’라는 이야기로 편집해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앞뒤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알수 있듯이 무리한 추측으로 어른들 앞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그분들은 치맛바람 강한 아주머니들인데다 한둘이 아니라 4-5명이었다. ‘저희 어머니는 학교에 못오시는게 아니라 안 오시겁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교궈니 최우선인데 지금처럼 부모님들 오셔서, 선생님들의 교육방향에 영향을 주는 말과 행동 혹은 그것과 유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시는 분이 바로 저희 어머니입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잔칫날과 같은 소풍에서 ‘이상한 반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대의원 어머니들이 준비해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신나게 놀다 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반장 어머니가 학교에 빠지지 않고 오실 필요는 없다. 반장 어머니는 학교에 오지 않으셨지만, 반장은 학교를 빠지는 날이 없었다. 다른 반 반장보다 키도 좀 큰 편이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 반 반장 키도 크고 얼굴도 뽀얗고 괜찮다는 반응은 있었다. 다른 반 반장보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적도 있다. 우리반 아이들이 어디가더라도 ‘반장 괜찮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소도 열심히 했고, 선생님께 이것저것 건의도 많이했다. 4교시 체육시간보다는 점심시간 이후 5교시 체육시간이 훨씬 반응이 좋을거란 건의가 받아들여진적 있다.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자율학습을 유도해서 친구들이 참 좋아했다. 학급회의에 대한 보고서 작성도 쉽게 쉽게 해서 친구들에게 쉬는 시간도 많이 만들어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박찬호 선수가 나오는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다가 부반장으로서 대신 혼난적도 있다. ‘선생님, 제가 보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혼내지 않으거 같다고 판단했지만,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셨다. ‘그렇게 얘기하면 안 혼날줄 알았냐?’ 그날 정말 많이 혼났다. 고등학교 3학년때는 가수 H.O.T가 2집 활동 컴백 무대를 몰래 보다 들켜서 또 많이 혼났다. 그 때는 1년전 학습효과가 있어서 ‘제가 보자고 하지 않았어요~’했지만, 역시 선생님의 반응은 ‘반장이 뭐하는거야? 그런것도 통제못하고~’하면서 엄청 혼났다.

학창시절 12년간의 반장은 선출직이 아니라 투표에 의한 반장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만들어진 ‘다수결 제도’에 의해 상대보다 한표라도 많으면 반장이 된다. 반대로 한표라도 적으면 자동 부반장이 되거나, 반장선거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된다. 국민학교 3학년 반장선거에서 ‘내가 내 이름을 썼기 때문에’ 반장이 된 경우도 있다. 내이름을 적으면 내가 당선이 될게 뻔했다. 고민했다. ‘내가’ 반장이 되고 싶어 반장선거에 출마했는데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는 것이 맞나?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했다. 현대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개방과 참여, 선택과 집중, 명분과 실리를 반장선거를 통해서 익혔다. 글로 표현할수 없지만,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도 배웠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해야하고, 나의 소중한 한표가 실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도 경험했다. 고등학교에서의 반장은 모두가 꺼리는 직무였다. 공부한창 해야하는 시기에 무슨 반장, 부반장이냐 하지만, 선생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아침 보충수업 참석인원 체크, 저녁 야간자율학습 참석인원 체크 등은 나중에 직장생활하면서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되었다.

지금 5학년인 용찬이와 3학년인 용채는 아직 반장 경험이 없다. (30년 전과 제도가 달라진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우스갯 소리로,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우수한 인재를 낳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아빠의 무관심’을 실천중이다) 엄마도 반장 부반장 경험이 없다고 한다. (유전의 힘은 무서운 것 같다) 어릴적엔 학교에 오지 않으시는 부모님이 별나다고 생각한적도 있다. 나는 부모가 되면 학교에 자주 갈거라 다짐했다. 선생님들과 친구가 되거나, 좋은 인생 선배가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가까운 친척 중에는 ‘교사, 교수 등’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좀 있다. 친구들 중에도 여럿 있다. 학교 다닐때 선생님 말씀 제일 안 듣던 애들이 결국 선생님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선생님 말씀 잘 들었는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되기엔 아직도 그릇이 작다고 본다. 선생님이란 직업은 위대한 직업이다. 반드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 무조건 따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들으란 이야기는, 귀담아 듣고 내 생각을 정리한 이후에 배우라는 뜻이다. 요즘엔 생소하지만 내가 ‘바담 풍’해도 너희들은 ‘바람 풍’으로 알아야 한다. 자기 학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문구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서로 돕는 과정을 통해 생존 방식 개선과 수명 연장을 이어간다. 말이나 소의 경우, 태어난지 반나절이면 뛰어다닌다. 이에 반해 인간은 6-7년 정도의 영유아 생존기를 지나,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미성년전자로 분류되어 성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가운데, 부모님과 선생님의 도움과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가정생활보다 학교생활에 더 신경 썼던 것 같다. 선생님한테는 안그러는데, 부모님한테는 그런다. 선생님께는 잘하면서, 부모님께는 잘 못하고, 학교 선배들에게는 잘하는데, 집에서 누나와 형에게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선생님보다 더 선생님, 선배보다 더 선배인게 바로 가족들인데 말이다. 나에게 반장은 20살 이후의 삶의 지혜를 미리 알려준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반장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가정에 소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마저도 반성하게 해주는 반장이라는 타이틀이 이제와서 참 고맙게 느껴진다.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정보다는 회사’가 우선이다. 잦은 야근과 회식, 주말 근무 등을 도맡아서 한다.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면서, 내가 총대를 메면 우리 반 친구들이 좋은 경험을 하게 되듯, 내가 일하면 세상은 편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그런 나를 이해해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반장’이라는 주제글을 통해 이제야 알았으니, 균형을 찾을수 있겠구나. 안심이 된다.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부모님의 아침인사가 귓전에 멤돈다. 이제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것 같다. 반장을 오래, 자주, 많이 하는 것은 이롭지않다. 그렇지만, 조화로운 삶을 위한 지혜를 알려준 ‘반장’을 한번쯤 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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