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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Sep 14. 2022

11. 열렬한 고백

야옹이가 추석 다음 날 내 옆에서 자고 갔다.

연휴 내내 하루 한 번씩 출석하던 녀석은 밥이나 간식을 먹고 나면 제 나름대로의 일정을 위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추석 다음 날, 밖이 깜깜해졌을 때 찾아온 녀석은 한동안 마당에서 뒹굴거렸다.

집으로 갈 때까지 지켜봐 주고 싶었지만 가을 모기가 워낙 억세서 현관문을 내내 열어둘 수가 없었다.

안에 들어와서 그루밍을 하라 얘기하며 손짓하니 또 쪼르르 들어와 거실 이부자리 위에 자리를 잡더니 곧 잠들었다.

야옹이가 잠들면 아빠도 평소보다 일찍 불을 끈다.

낮 동안 늘어지게 잤는데도 거실이 조용하고 깜깜하니 나도 괜히 졸렸다.

방의 불을 끄고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눈을 감았다.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이었다.

화면 밝기를 확 죽이고 폰을 하는데 드드득 드드득 뭘 긁는 소리가 났다.

야옹이가 침대 매트리스를 발톱으로 긁는 소리였다.

사방이 깜깜한데도 용케 내 방 침대까지 온 모양이었다.

잘 안 보여 팔 한쪽만 침대 밑으로 내리니 녀석이 대뜸 손에 머리를 마구 비볐다.

금방 침대 위로 점프해 올라와 내 옆에 딱 붙어 눕더니 또 잠들었다.

한 번 더 깼을 땐 침대 위를 서성이며 방 밖으로 갈 듯 말 듯 하기에 일어나 앉았다.

혹시나 집으로 갈 것 같으면 문을 열어 줘야 하니까.

녀석은 가진 않고 내 옆구리며 다리며 발에 머리를 비볐다. 열렬히.

좋다는 뜻인 걸 알고 있어서 기분이 참 이상했다.

누가 이렇게 열렬히 내가 좋다고 표현해 준 건 너무 오랜만이라.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저 밥과 간식 조금 챙겨 준 것 가지고 이럴 일이니.

사실은 내가 아주 못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새벽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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