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 했지.
누구나 아는 말인데 현실감이 크지 않다. 마치 영원히 살듯 미래가 없는 하루하루가 삶의 기본 패턴이기도 했으니까. 근데 내 순서는 언제일까. 죽어도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
가끔은 죽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죽음 이후에 내 심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싶은데 논리적인 모순이 생긴다. 그걸 현재의 이승에서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알려줄 수가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그래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언제가 나에게도 그 순간이 오겠지. 참으로 편한 말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내가 이 순간을 벗어났으면 싶다. 혹은 나는 아직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될까.
종종 부고장을 받는다. 예전이야 전화로 친구나 관계자들로부터 통지를 받았지만 요증은 대부분 메시지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알게 된다. 많이 알려진 공인이나 유명인 혹은 연예인들로부터, 몇 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선 후배나 친구들에게서 메시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는 내가 소속된 카톡방이나 밴드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아주 명백히 틀에 박힌 문구를 남긴다.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이 한마디로 많은 경우 할 일을 다한 게 된다. 굳이 부의금을 내지 않아도, 혹은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시간을 자연스럽게 넘기는 전가의 보도가 된다.
몇 년 전부터 스스로 저잣거리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많은 연락을 끊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내가 잊히는 것에서 자유로울까 고민이 되면서 미련이 남는다. 나는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에서 잊힐 거라고 호기 좋게 혼자 뇌까리지만 진짜 그게 내 의도일까? 자신이 없다. 그러다가 덜 컥 오랜만에 연락을 받게 되면 그래서 더욱 두렵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름. 왜냐고?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나 그만큼 잊혔던 이름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랠리 없다. 예전에야 칼럼을 쓰거나 페이스북에 소식이라도 남기면 그걸 보고 연락해 오는 지인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도 사치라 여기며 눈팅으로 세상을 다 이해해 버리기로 한 시절을 사는 요즘, 익숙하지만 낯선 이의 메시지는 두렵고 걱정이 된다.
근래 들어 그 상황이 분명 심해졌다. 제주에 내려와서 몇몇 지인이나 선배들 관련 부고장을 받으면 멀리 산다는 이유로 면피가 됐었다. 근데 제주생활도 이미 10년이 넘었고 이 지역에서도 나름 손가락에 꼽힐 듯한 지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제주에 와서 호형호제하던 형님 한 분이 황망하게 이승과 작별하던 순간이 커다란 충격이었듯 그 충격이 올해 들어서는 끊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동안은 거의 모진상, 부친상, 빙모상, 빙부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부고장의 명칭이 바뀌었다. 본인상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수차례 다시 보곤 했지만 그렇다고 본인상이 다른 글씨로 바뀌지는 않는 것이니 고스란히 충격으로 다가온다.
올해만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있는데 벌써 세 번째 본인상 부고장을 받는다. 처음에야 익숙하고 한 시대를 함께 살았던 듯한 연예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슬펐는데 어찌어찌 그것도 적응이 되나 싶은 순간부터 하나둘씩 본인상 부고장이 늘기 시작한다. 슬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 그와는 오랜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지만 그 기억을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나와 얼마나 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됐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사람에 대한 관계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물론 그가 살아있다고 그 관계에 대한 기억이 어딘가에 기록되고 살아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와의 인연이 영원히 단절됐음을 재차 확인하는 일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만큼 나 자신에게도 커다란 상실감이 되어 돌아온다.
지금 나이에 본인상 부고장을 날리려면 부인이거나 자식이거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동생이거나 형이거나 그렇다. 평생 나와 인연이 있어본 적이 없던 사람으로부터 결국 메시지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당사자의 핸드폰 기록에 저장되어 있던 연락처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부고장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각 개인들과의 인연의 깊이를 알 도리가 없으니 생전의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원수였는지, 절교를 했던 인물인지, 그리움에 쌓였던 인물이었는지 혹은 첫사랑이나 짝사랑의 대상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렇게 각 개인들과의 인연은 영원이 사라진다.
오늘도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로부터 본인상 부고를 받았다. 일요일 저녁 왠지 찜찜해 하루 종일 바빠서 보지 못했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익숙했지만 낯선 이의 메시지를 받게 되어 직감적으로 느낌이 온다. 설마... 역시나 그랬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시나마 그와의 오랜 인연을 되새겨본다. 인생의 마지막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나를 찾아 5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사업의 꿈을 꾸던 그였지만 그 후 아내와 이혼하고 힘겹게 살아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딸이 있었다는 소식은 알지 못했는데 딸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다.
울며 통곡을 해야 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한순간이 영원이 떨어져 나가 우주 먼지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공감대가 있던 인물이었던지라 슬픔의 잔영이 오래 남는다. 다음 주인공은 내가 되려나? 이렇게라도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게 맞나? 수많은 순간, 역사의 주인공이거나 삶의 진정한 주인 운운하던 시기를 살아왔건만 이건에 관해서 만은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데... 어쩌면 나도 곧 주인공의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착잡한 드라마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