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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Apr 11. 2022

좋은 부모가 자신 없을 때 써봐야 할 행복 리스트!

아이는 자라서 별일 아닌 것들을 뜯어먹으며 살거라고.


* 2022 서울우유 공모전 참여를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임신을 한 친구가 문득 제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본인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된다"고요. 자기 부모님처럼 희생적이고 완벽한 부모 역할을 해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어요. 그것이 만약 저의 일이었다면 같은 염려를 했겠지만, 친구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되려 더 객관적으로 친구의 걱정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아이에게 조금 잘해줄지, 엄청 잘해줄지'를 걱정하는 듯했어요.


"친구야, 너는 (아이에게) 어차피 잘해줄 것을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제안 하나를 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나는 대로 보자고. 그러다 보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아이에게 잘해준다는 게 무엇인지 선명해지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일단 저부터 적어봤어요.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 리스트>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울산
*중이염 때문에 잦은 통원 치료, 두 번의 수술을 할 때마다
  엄마가 약을 복용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흰 우유 대신 '딸기 우유'를 사줬던 것

*중이염 수술 전 자정부터 시작될 금식 전,
 퇴근 후 아빠가 급하게 아무렇게나 싸온 김치만 든 김밥을 먹었던 것

*엄마가 여름마다 미숫가루를 타 주고 맛있게 먹었던 것, 수박 한 통을 사서 나눠 먹었던 것

*아빠 퇴근 전 엄마가 멸치볶음이나 된장찌개 하는 걸 미리 맛보고,
  복도에서 아빠 오토바이가 도착하길 기다렸던 것

*아빠가 늦게 퇴근할 때면 붕어빵이나 메로나/비비빅 아이스크림을 사왔던 것

*소풍날 엄마가 새벽에 김밥을 말고 있으면 아침밥으로 김밥을 먹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김밥을 하나씩 바꿔 먹었을 때 우리 엄마 김밥이 제일 맛있었던 것

*나와 언니가 남긴 음식을 아빠가 다 먹어줬던 것

*아침에 부엌에서 밥솥의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것으로 잠이 깼던 것

*여름휴가 때 야외에서 엄마가 만든 장아찌를 곁들어 가족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것

*부드러운 감촉의 내복을 입고 잤던 것

*아침에 일어날 때 팔다리를 쭉쭉 늘리고 당기며 엄마, 아빠가 깨워줬던 것

*겨울 옷을 껴입을 때마다 손끝을 잡으라고 엄마가 가르쳐 줬던 것

*내가 묶은 신발끈이 자꾸 풀리면 길에 서서 아빠가 끈을 두 번 단단히 묶어줬던 것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앞머리를 휘날리며 동네를 슝~ 돌았던 것

*차에 탈 사람이 6명 이상이면 조수석에 있는 엄마 무릎이 막내인 내 자리였던 것

*엄마, 아빠 양손을 잡고 계단을 날아서 내려온 것

*차에서 멀미할 때 온 가족이 멈춰, 내가 토를 다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차에 다시 탔던 것

*"우리 딸은 산을 잘 타네"라는 말을 들으면, 부모님보다 더 앞서 산행하려 했던 것

*가족끼리 배드민턴을 치던 기억, 한쪽이 더 못 쳐야 그림!

*엄마가 세탁해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체육복을 입고, 선선한 가을날 등교하던 것

*학교에서 해마다 수련회를 가면 아빠가 왜 전화 한 번도 안 하냐고 서운해 했던 것,
  그 다음부터는 공중전화로 연락을 드렸던 것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 면접을 보러 갔는데, 들어가기 전 뒤돌아보니 아빠가 손 흔들어줬던 것



"부모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 소중하다"

오은영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른이 된 제게 크게 와닿지 않는 말이었는데,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 리스트>를 기록하고 보니 금방 수긍이 갔어요. 어린 시절 행복했던 일들엔 대단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 그냥 부모님이 제 곁에 존재하며 해주셨던 사소한 것들이 어린 저를 행복하게 했더군요.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봤다거나 PMP를 PPT 발표까지 한 후 겨우 사주셨을 때, 서울에 처음 가봤을 때. 이런 것들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음식과 관련된 것,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해줬을 때'의 일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훨씬 많이 생각났어요.


어른들은 자극적인 경험을 갱신해야 자족하지만
아이들은 일상적인 것들이 가장 자극적인가 봅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할 만큼.



삶의 작은 즐거움을 사랑하라

그림책 <작은 꽃 - 김영경 지음> 작가의 말 중에서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니 제가 더 나이가 들어 인생을 회고할 때도 대단한 것들이 인생을 윤이 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짐작됐어요.


좋은 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옷가지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받쳐줬던 손길들

힘내라고 끝까지 쳐다봐주던 눈빛들

어린 입속에 들어갔던 정성된 쌀밥들

아플 때 사준 '딸기 우유'같은 것들

보글보글 된장찌개처럼 마음이 느껴지는,

관계에서 주는 감정이 행복하게 해 줄 것임을.

'인생 잘 살았다'라고 여기게 될 거라고 힌트를 주더군요.



지금의 저는 우유를 대부분 라떼로 마십니다.

맛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정신 차리고 각성해야 할 때, 집중하고 싶을 때 더 많이 마시곤 해요.

하지만 '딸기 우유'를 볼 때면 특별한 감정이 생깁니다.

울 엄마가 나 아프지 말라고, 독한 약 먹을 때는 뭐든 잘 먹어야 한다고 말하며 사주던 음식이라서요.


더 큰 내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겨우 나여서 마음이 상하곤 하는 어른입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는 삶도 버겁습니다.

하지만 딸기 우유를 보면, 잘 살고 싶어 집니다.

나를 돌봐줬던 기억들이 어른에게 말을 걸어오거든요.



함께 써보는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 리스트>

저와의 대화로 곧 부모가 될 친구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너는 어차피 아이에게 잘해줄 거고,
아이는 자라서 네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뜯어먹으며 살 거라고.
그것이 행복한 기억이 되어
너의 어른을 다시 돌볼 거라고."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몽골




안녕하세요!

콘텐츠 에디터 @arazuda입니다.

문득 '나는 어떤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터무니없게도 '편지'라는 장르가 떠올랐습니다. 편지에는 세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1) 타깃이 분명합니다. 2) 내용에 진정성이 핵심입니다. 3) 쓰는 이의 지식을 뽐낼 수 있는 현학적인 언어보다 받는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사실 편지의 이런 속성은 브랜드가 콘텐츠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와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한 날에는 진심을 전하고 싶어 집니다. 콘텐츠 발행에 에디터가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 이메일이나 댓글로 연락 주세요!

 (arazuda@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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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0대를 갈무리한 '아프리카 여행 에세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러 오세요! 당신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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