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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마 Sep 15. 2021

작고 복슬거리는 상실에 대하여

펫로스 증후군을 말하다

모두가 '장수견'이라고, 대체 비법이 뭐냐고 물어보던 그런 녀석이 있었다.

무려 나와 20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내가 중학교의 입학을 기다리던 그 설레는 12살이 끝나가던 시절부터 32살이 되기까지 말이다. 그동안 나에게는 참 많고도 많은 일이 있었다.

재수를 하며 서울 중심부의 대학교에서 한때는 슈퍼 디자이너가 되어보겠다며 미친 듯이 밤을 새우며 시간을 보냈고, 그 이후에는 그렇게 원하던 기업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처럼 멋지지 않던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그 안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하고, 또 최근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이 대학원에 입학하며 공부를 시작하려던 나날이었다. 아무리 줄여보려 해도 구구절절해지는 나의 경력이 말해주듯이,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또리'는 이 긴긴 세월을 함께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던 친구들은 이미 몇 년 전에 그 녀석들을 별로 보낸 뒤였다. 그때마다 나도 마음을 졸였다. 또리는 건강하냐고 잘 살아있냐는 주변 친구들의 말에, '아 그러게 또리는 아직 팔팔한데?' 혹은 '눈은 잘 안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성격은 여전해 괜찮아."라고 여유롭게 말하고는 했다.


과학의 발전에 맞추어 시대가 흐를수록 반려견의 수명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엔 10년 남짓 살던 반려견이 이제는 15년가량은 거뜬히 살아주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 또리는 그에 비하면 몇 년은 더 살았다. 남편도 말했다. 그래도 보통 강아지들을 누릴 수 없는 20년이라는 긴 수명과, 그 기간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천수를 누렸음을.


사실 이 녀석을 보내기 몇 년 전부터 매년 마음의 다짐을 하고는 했었다. 혹여 올해 또리를 보내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자고, 인간과 동물의 시간은 명확히 다르기에 보내줄 수 있을 때 멋지게 보내주자고.


수백 번을 다짐할 시간이 넘치던 느낌으로 나는 생각 이상으로 건강하게 살아주는 또리에게 약간의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또 어쩌면 우리 강아지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걸지도 몰라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이 녀석은 8월 28일 토요일 12시 45분 즈음 내가 보고 있지 않을 때 헐떡이던 숨을 멈추었다. 논리적인 사고를 주로 행하던 나의 머릿속에서 수백 번이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는 나의 젊은 시절에 나를 떠나게 되어있고, 또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막상 또리를 보내는 날 나는 매우 성숙했다. 나의 가족들은 또리의 부재에 크게 상심했고 그러한 와중에도 이 녀석을 예를 갖추어 보내고자 했다. 모두가 슬퍼하는 와중에 나는 차라리 이성적으로 이 녀석의 장례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며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남편이 운전해주는 동안 생각했던 것은 우리 또리를 재로 남겨야 할까, 혹은 스톤으로 남길까. 그리고 이 녀석이 정말 떠나긴 한 걸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동하는 시간 동안 일전에 강아지를 보낸 친구한테 연락을 했다. 그녀는 3년가량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반려견 보니가 프로필 사진에 머물러 있었다. 그냥 그 친구가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친구는 번거롭지 않게 보니를 스톤으로 남기고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는 또리를 어떻게 남길까. 그 당시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 도착하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 녀석을 쓰다듬을 때도 그냥 그래, 이렇게까지 노화된 상태로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녀석이 차라리 하늘나라에서 성한 몸으로 뛰어노는 게 나을 거야. 그냥 그 생각뿐이었다.


몇 시간 뒤에 도착한 내 동생이 연신 눈물을 훔치며 속상할 때에도 나는 그저 생전 또리의 유별난 행동을 지적하며 장난만 칠 뿐이었다. 참 그렇게 잘 보내주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3주가 지나가는 지금 나는 매일매일 그 갈색 녀석을 그리워한다. 저녁만 되면 갑작스럽게 그냥 또리가 보고 싶다. 장례지도사님도 충분히 살다 간 또리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그 녀석이 편히 갈 수 있게 보내주자고 했었고 그 말에 크게 동의했다.


그런데 그냥 매일이 미안하고 지금 와서 정말 많이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전에 이 복실 거리는 녀석들은 보낸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이제야 이 상실이 얼마나 크고 아픈 것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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