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엄마를 해 시리즈
이제는 조이가 9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3월부터는 오전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시간 확보가 되고 있는 셈.
하지만 빠른 사회복귀를 결심했던 작년 10월. 나는 출산 4개월 차였고, 조이는 쭉 가정보육이 필요한 아기였다. 남편과 상의 끝에 내 확고한 마음을 전했다.
나는 사회생활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면 좋겠어. 뭐라도 해낼게!
고민 끝에 남편이 11월부터 육아휴직을 3개월간 해주기로 했고, 나는 이 시간을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우리는 사실상 남편의 외벌이 가정이기에 남편은 휴직에 의한 경제적 타격에 굉장히 걱정이 많았다. 사실.. 생각보다 자꾸 옆에서 걱정을 심하게 소리 내어하는 탓에 나를 믿지 못한다는 기분에 다투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나의 의지에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이 당시 타이밍 좋게 들어온 외주, 연구비, 공모전 상금 등으로 남편의 벌이를 대부분 메꾸게 된다. (걱정의 순기능?)
사실 처음부터 창업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취업준비 포트폴리오 제작을 목표로 남편에게 휴직을 부탁했던 거였기에 보수적인 남편 입장에서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다.
“포트폴리오 한다며.. 외주 일을 받아도 괜찮겠어?”
“창업공모전..? 그런 거 할 시간 있어?”
“괜히 이것저것 다하다가 고생하지 말고 내가 아기 봐주는 동안 포트폴리오만 만들어.”
지금 생각하면 다 걱정하는 말인데.. 그때는 내 판단을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도 많이 냈었다. 남편은 굉장히 전형적인 루트를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충동적인 결정을 추진력 있게 실행해 보는 사람이다.
어쩌면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기에 오히려
3개월간 굉장히 많은 성과를 낸 것일 수도.
뒷일 생각 안 하고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나에게는 걱정인형인 누군가의 브레이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자마자 동네에 카페 겸 1인 사무실 대여를 하는 업체에 계약을 했다. 한 달에 무려 36만 원으로 비교적 비싼 가격이었다. 커피도 따로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니고 라테만 20% 할인해 주던 곳..
갈 때마다 커피 두 잔과 디저트를 하나씩 먹었더니 사장님이 날 좋아했다.
(사장님이 지금도 너 기다림)
그리고 주말포함 매일 한 시간이라도 가려고 노력했다. 어쩌다 안 가고 놀았던 날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크리스마스 때도 사무실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스파르타(?) 식으로 살아온 결과, 3개월 만에 다음과 같은 성과를 냈다.
1. 디자인 외주 업무 (주 1회 출근)
2. 대학원 연구
3. 교내 서포터스 활동
(활동비 월 50만 원 받으려고 했다)
4. 창업 공모전 수상
5. 논문 한편 완성 및 게재
6. 녹화강의 한편 제작
평소엔 이렇게까지 못했을 텐데.. 제한된 시간의 힘, 그리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렇습니다.
남편은 이때 육아휴직을 한 뒤로 육아 초고수가 되었고 조이와의 관계도 더욱 깊어져서 케어를 굉장히 잘한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어린이집 맘들도 나에게 먼저 우리 집은 남편이 육아 많이 한다고 알고 있을 정도(...)
저렇게 많은 일을 수행했으니 아이와의 추억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니다...! 난 남편의 육휴기간 동안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도 굉장히 많이 보냈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을 때는 가족에게 집중해서 잘 지내자는 것을 중요한 룰로 잡았었고, 아무리 집중이 잘돼도 하루 업무시간을 8시간을 초과하진 않았다. (주말까지 나갔으니 가능했을지도)
나는 바쁜 사람이 그 관성에 의해 일처리가 더 빠르다는 말을 믿는다. 실제로 나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더 빠르게 돌아갔다. 할 일이 당장 많지 않은 지금은 오히려 일처리가 느릿느릿하다. 왜일까?
당시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못해냈다고 자책하던 나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거의 각성한 만화주인공 마냥 잘도 저런 모든 일을 해냈다.
극적인 발전은 제한된 자원에서 나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