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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잇아웃 정PD Aug 27. 2017

남윤선, 이정, 허성무 공저 <반도체 전쟁>

중국의 엄청난 파워가 한눈에.

반도체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반도체 관련 도서를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우선, 읽을 만한 책이 없다. 반도체를 소개하는 책은 그 내용이 얕고,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정작 내가 궁금한 내용 (내 전문 분야)은 한 줄 정도 나오고 만다. (그나마도 내가 담당하는 분야는 보통 이야기하는 8대 공정도 아니어서... 어디에서 설명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좀 두껍고, 약간 전문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바로 여러 수학공식들이 등장해 책을 볼 마음을 없애 버린다. 마지막으로, 이 두 종류를 벗어난, 정말 반도체와 산업에 대한 교양서 수준의 책이 있다면, 대부분 오래되었다... 매년 신규 공정이 새로 만들어지는 반도체 업계에 대한 5년, 10년 전 이야기를 보는 것은, 재미도 없는 복학생의 군대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도체 전쟁'은 그런 면에서 여러 장점이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사드와 무역 보복 등으로 큰 관심사가 된 중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굳이 반도체가 아니더라도 중국의 모습을 알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작년부터 (책에 따르면 훨씬 전부터) 알려진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다루고 있어, 적절한 시기에 출간이 되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사내 전자도서관의 예약이 30명 가까이 밀려있고, 줄지도 않는다. 나도 예약했다 결국 포기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공저자 3분 中 한 분이 기자여서 인지, 앞부분의 내용들은 열심히 취재하고 정리해 만들어진 잘 쓰인 기사를 기사를 보는 느낌이다. 책이 얇고, 가독성도 좋아 금방 읽을 수 있다. 내가 필요한 정보만 찾아본다면, 그냥 서점에서 잠시 훑어봐도 모두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책 내용에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었다. 다만 막연히 '이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던 것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어떤 조직을 만들고, 어떤 인물들이 활동하고 있고, 어느 만큼의 돈을 투자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오히려 LCD 관련 내용이었다. 중국 LCD가 이미 한국을 따라잡았고, 한국 업체들은 중국을 피해 OLED로 이미 대부분 옮겨간 상태라니. 그리고 그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현황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마지막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서술한다. 공저자인 허성무 KOTRA 중국 선양무역관 부관장 이 중국사회과학원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한중 반도체 협력 방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총 3가지 방안을 제시하는데, 


중국을 연구개발의 동반자로 인식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역량 강화
장비 및 소재산업 경쟁력 강화


이다. 특히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중국과의 협력에 대해 퀄컴의 사례를 든다. 처음 중국이 한국을 파트너로 하려 했으나 한국이 거절했고, 이후 퀄컴에게 어마어마한 과징금을 물려 억지로 공동개발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개발할 제품은 이미 양산화가 끝난 이전 제품들이고, 그로 인한 기술 손실은 크지 않다. 결국 한국 업체들이 중국에 안 좋은 인상만 심어주고, 향후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결과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회사에서나, 주위에서나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런 결과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당시에 판단했을 때,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저자가 앞부분에서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있듯이, 엄청난 자본과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로 중무장한 중국한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에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동반자로 인식할 때, 과연 중국도 그러할지. 역시 책에 소개되어 있는 LCD 사례를 볼 때,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커 보인다. 



이 책을 읽었다고 당장 내일 무엇이 달라질 건 없다. 나는 또 매일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쓰기도 민망하지만, 결국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저자들의 문제의식에 대한 한 사람의 엔지니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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