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평화적인 미래를 위해.
4.27 남북정상회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생긴 몇 안 되는 행운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걸어나와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관람하고...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다니. 하루 종일 펼쳐진 그 모든 과정은 비현실적이었다. 북한을 적대시하거나 안 좋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나에게 북한이란 우리 옆에 존재하는, 하지만 큰 관심은 없는 곳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나의 인식을 많이 바꾸어주었고, 비단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저자 박한식 교수에게 북한은 관심 없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 적힌 그의 일생은 그 자체로 한국의 현대사이다.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평양 피난민 수용소에서 머물고, 이후 남한에서 생활하다 미국에서 공부한 그는 어린 시절 겪은 두 번의 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을 통해 평생의 화두인 '평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북한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지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 큰 역할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라는 부제처럼,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편견들을 논파한다. 전반부는 북한 붕괴론, 독재자, 선군정치, 인권, 외국인 억류 등 북한 내부 사정들을 다룬다. 큰 주제들에 대한 의견은 예상되었지만, 장성택 숙청의 뒷이야기, 집단 경쟁체제의 장마당, 외국인 억류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세부 내용들은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내용들이었다. 특히 김정은의 목표가 덩샤오핑이라는 견해는, 실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했다고 전해진 '체제가 보장되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발언과 그 이후의 행보들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후에는 논쟁적일 수 있는 사안들이 다루어진다. (이젠 귀가 아플 정도인) 대북지원과 핵개발 논쟁, 북중관계, 대한민국의 대북정책 역사, 북핵과 미국과의 관계 등이다.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듣는 대북지원 내용과 판문점 선언에서 '3자 혹은 4자'라는 문구 때문에 논란이 된 중국과의 관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오바마 행정부 등은 최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내용을 접했었다. 오히려 가장 새로웠던 건 우리나라의 대북정책 역사였다.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하게 되면서도, 군부 독재정권과 직후 민주 정권에서 나타난 정 반대 입장이나 최초 남북정상회담 무산 과정 등을 보며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저자는 안보가 아닌 평화라는 프레임으로 사안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민족적 동질성을 추구하기 이전에, 비공식 대화 등을 통해 교류를 확대해 나가며 지난 시간 떨어져 살아오며 생긴 이질성을 인정해야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견해에 수긍하는 만큼, 답답한 마음도 커졌다.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내용은 듣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그런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다만 선호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접근법은 비단 북한을 바라볼 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나갈 때, 통일도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p.s 남북정상회담이 이후 한 달이 지난 오늘, 남북 정상은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다. 최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쏟아지는 뉴스들은 잠깐 놓치면 따라잡지 못할 정도이다. 이 모든 과정이 우리나라의 앞날에 긍정적인 결과로 귀결되길 바란다.